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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는 다르지만 [김태형] 디우, [민윤기] 디이 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은 프롤로그입니다.
다음편부터는 본편이라, 전체 말머리 달고 <아포칼립스의 딸들> 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TW: 속되고 저급한 언어 사용, 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물, 디스토피아물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C. 지뢰는 언제나 평지에 있다




1.

인간 얼굴이야 눈 코 입 대충 각 맞춰 휘저어 넣으면 알아본다지만 아직까지도 껍데기에 집착하는 인간은 많았다. 지구가 망하다 못해 지옥탕에 거하게 자빠지고도 다섯 자매는 그 영향을 톡톡히 받았다. 디산은 디이의 막나가는 성격을 봤을 때 그녀가 살아가며 대가리를 열다섯 번밖에 맞지 않은 건 분명 얼굴 탓이라 생각했다. 만약 제가 디이처럼 굴었더라면 진즉 갈고리에 모가지가 따여 죽었을 게다.

피땀이 눌어붙은 욕지거리는 천박하기보다는 예뻤다. 단순했다. 얼굴이 예뻤으니까. 싸구려 말씨와 독기 서린 눈빛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번 해보겠답시고 들러붙는 팔푼이들은 여전했다. 디우도 그랬다. 맏언니 디이의 성격을 쏙 빼다박은 것도 모자라 시선을 잡아끄는 얼굴마저 같았다. 물론 미모는 권력이 아니다. 그래서 디이는 느글거리는 눈깔을 한 난봉꾼들을 쑤셔 죽였고 찔러 죽였고 비틀어 죽였다. 얄쌍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에서는 피비린내가 지워지는 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디이의 얼굴에는 그녀의 것이 아닌 살점이 말라붙어 있었다. 열살 디우에게 조잡한 수제 폭탄을 안겨주고 떠난 것도 디이였다.  


디우야. 이젠 언니가 널 못 지켜줘. 왜냐면 언니는 씨발 엄마가 저렇게 구는 거에 진절머리가 나거든. 뒤질 거면 뒤지고 살 거면 살지 왜 저렇게 애매모호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진짜...

...

아무튼 세상엔 좆같은 새끼들이 존나 많아. 그러니까 누가 널 건드리면 이걸 걔네 아가리에 쳐넣어 버려. 알았지? 여기, 이거. 빨간색 누르고. 바로 던지고. 튀어. 걍 존나 튀어.

...

씨발 새비지고 뭐고 다 좆같아. 지구는 망했는데 왜 여긴 아직도 양놈 말을 써? 어디 내가 이기는지 이 세상이 이기는지 두고 보라 그래 개씹새끼들...


볼살 통통한 어린애에게 디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디산은 저 저 뒤에서 밋밋한 얼굴로 가만히 숨을 죽였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도덕을 잃고 날뛰건 말건 디산은 그게 제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다못해 개미 새끼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도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붙어먹었고 추잡하기 짝이 없게 뒤얽혔지만 존재감 없는 계집애에게 신경 주지 않는다. 그래서 디산은 조용히 있었다. 조용히 있고 조용히 있고 또 조용히 있었다. 이대로 날아다니는 포자인 양 조용히 살다가 어디 쓰레기 더미에 앉아 버섯이나 피우면 되지 않나 싶었다.

디산은 제 주제를 알았다. 자신은 디우처럼 꽃도 아니었고, 디이처럼 불꽃도 아니었다. 제가 피울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버섯 쯤이었다. 

포자와 곰팡이의 미묘한 틈을 노니는, 하릴없는 쓰레기 따위의.




2. 

모두가 디이가 죽었다 입을 놀렸지만 디산은 디이가 살아있을 걸 알았다. 원래 세상이 그렇다. 죽겠다고 별 지랄을 떠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하늘은 원래 그렇게 좆같이 도박판을 굴리니까. 눈에 핏대를 세우고 아득바득 살려 구는 놈들은 가뿐히 압살시키고, 죽일 거리면 낱낱이 찾아 뛰어드는 놈들을 낚아 올린다. 흑과 백의 체스판을 삶과 죽음으로 나뉘어 막무가내로 말을 굴린다. 목울대에 울컥 용암 같은 화가 고였다.

그래서 디얼과 디쓰가 죽은 거다. 그래서..., 그래서.

두 자매의 죽음 이후로 깨달았다. 뭣도 모르고 미지근한 외줄타기를 하다 보면 숨결 한 번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선을 넘을 거면 확실히 넘어야 했다. 

그렇지만 디산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밋밋하게 웃었다. 눈앞에서 인간이 갈려나가든, 겨우 일궈낸 집터가 무너지든, 엄마가 약에 취해 제가 딸인지 개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팰 때도 다 밋밋하게 웃었다.

아, 딱 한 번.


언니 왔다!!


디이가 삼 년 만에 돌아왔을 때, 디산은 그때 처음으로 웃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을 수가 없었다. 양 팔에 괴기한 문양을 수놓고 보이는 족족 금속으로 구멍을 뚫은 디이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놀라웠던 것도 아니다. 디이는 언제나 상식과 이성을 좋답시고 파괴하며 돌아다녔고 그 파편을 디딤대 삼아 뛰어오르곤 했다. 중요한 건 디이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저 남자였다.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저건..., 디이가 감당할 만한 게 아니다.

딱 딱 이가 맞부딪히며 불유쾌한 소음을 냈다. 쓸데없이 발랄하고 까불대는 제 언니가 기어코 뱀에 목덜미를 물렸다. 더 무서운 건 디이는 제가 목덜미가 물렸는지조차 모를 거란 거다. 이미 박힌 독니가 혈관 속 피를 죄다 몽글몽글 푸딩덩어리로 만들 때까지 멍청하게 웃을 게 뻔했다. 언니는 이미 덫에 걸렸다. 그리고 동시에 제 어중간하고 밍밍한 인생에도 제동이 걸렸다. 


언니 여기 오래 못 있으니까 빨리 말할게. 놓치지 말고 들어.

...응.

이게 뭔지 알아? 총이야.

...

언니도 많이는 못 줘. 여기에 딱 세 발 들었어. 씨발 사실 너랑 애들한테 존나 오천개씩 주고 싶은 게 내 맘인데 아저씨가 지랄하잖아. 아 씨팔 아저씨 또 야리네...

...

디우 개는 내가 돌아서자마자 세 발을 죄다 써제낄 년이라 못 줘. 너가 언니니까 잘 간수할 수 있지? 진짜 니가 뒤져도 못 이길 씹새끼가 널 건드리면 이걸 써야 돼.

...

여기다가, 손가락을, 이렇게..., 걸고...


디산은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손가락에 걸렸다. 철퍽철퍽 질퍽질퍽 망자의 발소리가 귓바퀴에 고인다. 손끝 닿은 철덩어리에서 핏빛 지문이 묻어났다. 


빵!

...

그럼 쉽지? 


디이의 입술 사이 장난스러운 효과음이 들렸다. 디산은 몸을 빳빳하게 굳혔다. 펄떡 펄떡 공포에 응고된 혈관을 타고 심장이 잘도 뛴다. 어떡하지. 언니가 정말로 무서운 남자를 만났다. 쿵 쿵 숨이 막혔다가 뛰었다가 막혔다가 뛰었다가 한다. 살갑게 웃는 얼굴에서는 장미와 비누 냄새가 났다. 언니가, 저 고-급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아주 무섭고 무섭고 무서운 남자를 만났단 뜻이다.


언니 나중에 또 올게, 응?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돼. 근데 장담은 못하겠다 아저씨가 존나 싫어해서. 

...

아 아저씨 그만 좀 꼬라봐요!! 얼마 안 걸린댔는데 뭐 그렇게 칭얼대.

...저런 걸 신경써야 해?

아 내 동생이라니까!! 이따가 뽀뽀 한 번 해줄 테니까 입 닫고 조용히 가요.


쫑알거리는 디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남자가 시선을 돌려 저를 바라봤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딸꾹질이 일었다. 창자가 꼬였다가 풀릴 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울컥대며 한숨을 뱉는다. 먹은 게 없어 신물이 목구멍을 기어오르는 판국에 위장마저 튀어나올 듯이 굴었다. 길고 날렵하게 좁혀진 동공. 정확히 이마 정가운데와 왼쪽 가슴을 쏘아보는 시선. 달아오른 총탄처럼 시뻘겋고 뜨거운 눈빛은 이미 발화점을 넘어섰다. 디산은 딱 울고 싶었다.

그 눈이 경고한다. 디이를 귀찮게 만들지 말라고.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거라고. 

반틈짜리 입술 사이로 갈라진 혀가 보인다. 언뜻 쉭쉭대는 숨소리가 물비린내를 풍기며 달팽이관을 적신다. 디산은 벌벌 떨며 품 안에 총을 구겨넣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디산은 이걸 쓸 일이 죽어도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절대 나대면서 안 살 거야. 나는 절대 선을 안 넘을 거야. 조용히 살다 조용히 죽을 거야. 진짜..., 진짜...


십칠 년 인생 속 굴곡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혀 깨물고 죽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3.

인생에 맹세나 장담 같은 건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딴 걸 지껄이다 보면 하늘나라 붉은 실 꼬는 인간들이 드라마를 만들겠답시고 언제나 인생을 비틀어 버리니까. 죽어도 총을 쏘지 않을 거라 바락바락 울어 제꼈는데 그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첫 발은 디우를 구하러 쐈다. 웬 정신 나간 미친새끼가 디우 목을 조인 순간 총을 당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술 취한 엄마가 실수로 쐈다. 무너진 벽을 이어붙이며 디산은 엄마 대신 총을 고작 벽장에 숨긴 저를 탓했다. 그 다음부터 언제나 누더기 자켓의 오른쪽 천주머니에 총을 넣고 다녔다. 누빈 자국 틈 생긴 구멍으로 혹시 보일까 언제나 전전긍긍하면서도 절대 떼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총탄도, 생각보다 아주 빨리 쐈다.

엄마 어떡해. 피가 철철 솟았다. 엄마 씨발 어떡해. 피가 더 솟았다. 손이 벌벌 떨리고 이제 그저 고철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총기가 발 아래 떨어졌다. 팅 팅 팅. 돌부리에 부딪히고 마구잡이로 진흙탕에 구르는 꼬라지를 보고도 정신이 들질 않았다. 따끔대는 토악질이 울컥 올라왔다. 어제 쳐먹은 물러터진 토마토가 시뻘겋게 터져나왔다. 시고 역겹게 혓바닥에 달라붙은 토사물이 눈앞 피바다보다 붉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직도 생각을 멈춘 디산이 겨우겨우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니까, 여느 때처럼 먹을 걸 주우러 나왔다. 산 부근에는 아직까지도 열매며 풀떼기며 긁어모으면 나름 먹을 만한 게 있어서였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왜 씹새끼야. 꼬우면 아까처럼 아가리 털어보든가.


뭘 봤지?


너도 뒤질 때 되니까 입이 안 돌아가? 씨발..., 맥스도 그랬어..., 맥스도 그랬다고!!!


피로 범벅이 된 기억이 매섭게 뇌를 주물럭댔다.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작렬하는 화기에 익어들었다. 쿵 쿵 목울대에 심장이 박힌 양 무차별적으로 맥박이 뛰었다. 침 한 번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목이 무거웠다.


넌 뭔데 꼬라봐? 씨발 이 새끼랑 한 패야? 야. 야 그거 내려놔. 야. 야!!!!!!!


디산은 억지로 신경세포를 감싼 기억을 떼어냈다. 손아귀에 질척질척 들러붙은 것들을 하나하나 들어올릴 때마다 참사의 퍼즐이 맞춰졌다. 제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모를 머리가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고. 탄약 냄새에 둘러싸여 정신을 잃었다 깨었다. 반동으로 접질러진 손목이 아릴 기세도 없이 다시 정신이 졸렸다. 온통 어질어질했다. 위산이 목구멍을 태우는 감각이 가까스로 디산을 현실로 되돌렸다. 그녀는 축축한 입을 대충 옷소매로 닦으며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날뛰는 단어의 조합이 갈 길을 잃고 흩어졌다.

있잖아. 그냥 막. 도망치려 했었는데. 그 남자가 날 봤나? 안 봤나? 그래서 막, 총을 쐈나? 소리를 질렀던 것 같은데. 왜 내가 총을 쐈지. 왜 저 남잔 쓰러져 있지.

내가 죽였어?

두개골을 아작낸 구멍을 타고 타고 흐른 핏물이 헤진 신발코를 적셨다. 들린 밑창을 타고 맨 발바닥에마저 축축한 감각이 고였다. 엄마 엄마 엄마..., 눈물이 줄줄 났다. 우리 엄마는 이 시간에도 내 생각은 무슨 담배 이파리에 붙은 벌레새끼나 잡고 있을 텐데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부러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었는데 결국 다 이거다. 

죽은 건 죽은 거다. 디산은 찌익대는 발을 떼어 시체 앞에 섰다. 죽은 건 죽은 거다. 그녀는 유달리 확장된 동공을 무시하며 시선을 돌렸다. 죽은 건 죽은 거다. 벌거스레한 살덩이가 불안감을 표명하며 입천장에서 딱 딱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죽은 건 죽은 거다. 돋궈진 돌기에서 비린내가 나는 건지 아니면 참사를 담은 망막이 목울대를 타고 내려온 지 몰랐다. 

죽은 건 죽은 거고..., 산 건 산 거다.

디산은 시체의 옆에서 반쯤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 가까스로 숨을 쉬는 몸뚱이가 가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피와 머리카락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쓸었다. 손끝에서 차갑게 부유하는 숨소리가 낮고 떫었다. 언니가 그랬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정신이 들어요?

...으...

살아..., 살아 있어요? 저기요. 살아 있어요?

아, 파...


남자가 고개를 꺾었다. 그 순간 디산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약. 약. 약이 필요했다. 마약도 약 아닌가? 양귀비 모가지를 떼어야 하는지 손틈새를 파고드는 줄기 솜털을 쥐어짜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디산은 무턱대고 엄마가 꿍쳐놓은 주머니를 들고 튀었다. 끓는 물에 대충 던져넣은 씨앗 더미가 부그르르 마구잡이로 수면을 유영했다. 

흙탕물인지 축축 처지는 물안개의 증류수인지 알 수 없는 걸 먹였다. 물론 남자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턱을 타고 흘러가는 게 더 많았다. 그래서 디산은 기왕 살리는 거 제대로 살려보기로 했다. 선을 넘어서 무섭다면 넘고 넘고 또 넘어버리라는 언니의 말을 기억했다. 차를 머금고 입을 맞췄다. 뇌를 완전히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는 냄새가 났다. 머리뼈 안에 머릿골 안에 신경이 조막조막 뒤틀렸다 떼어졌다 뒤엉켰다 떼어졌다 뒤얽혔다 다시 떼어질 때마다 환장하게 좋은 기분이 돌았다. 사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같이 약 빨았다. 사람들은 이래서 키스를 하나? 이래서 지구가 망하고 천지가 엿가락처럼 꿀렁댈 때도 일단 입술부터 부빈 건가? 뒤엉킨 살덩이가 좋은 건지 약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보다 좋은 건 남자의 목울대가 움직인단 거였다. 디산은 그제야 입술을 뗐다.


아, 그만, 그만 좀...,

...너 뭐야...?


낮게 긁어 내는 목소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 나 지금 약간 좆된 거 같아. 근데 언니가 좆된 거 같으면 계속 달리랬잖아. 그럼 모른 척 하고 밀어붙여야 하나.


...내 말 들려요? 이제 좀 안 아파요?

...

나도 사실 가진 게 없어서..., 아 어떡해 또 피 나..., 일단 어떻게 지혈이고 뭐고..., 아 나 이런 거 하나도 모르는데...


강박적인 책임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옷자락이라도 찢어 상처가 움찔대는 가슴께를 둘렀다. 파들거리는 손을 반대쪽으로 붙잡고 억지로 칭칭 감아 눌렀다. 피가 멎는다. 디산은 가까스로 숨을 내쉬었다. 그가 느릿하게 몸을 틀었다. 그제야 디산은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물안개가 낀 동공이 꿈뻑댔다. 매끄랍고, 차분하고, 고요하다. 잠시 초점이 맞춰지자마자 디산은 뒷걸음질쳤다. 툭 툭 목이 졸렸다. 시선을 맞댄 순간 까무룩 헷갈리는 것들이 많았다. 이 사람 진짜 착한 게 맞나? 외줄타기 인생에 두 번째 제동이 걸렸다. 




4.

남자는 이름도 나이도 온 곳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상 숨긴다기보다는 그저 말이 적었다. 그래서 주로 디산이 이것저것 묻곤 했다. 괜찮은지, 아직 아픈지, 배가 고픈지, 어디 갈 곳이 있는지..., 그럼 남자는 깜빡깜빡 눈으로 답했다. 예쁘고 검고 반질반질 유리알처럼 빛나는 그 눈으로. 자기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눈으로. 세상 온갖 예쁘고 부드러운 것들로만 모아 만든 커다랗고 유순한 눈으로.

디산 앞에서 남자는 눈꼬리를 올리지도 시선을 갈지도 않았다. 대신 디산이 한 줌 고개를 돌렸다 싶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각사각 스각스각 눈초리를 싹싹 갈아 날을 세워 훑는다. 그랬다 하면 창문 너머 풀숲에 잔가지에 쓰레기더미 틈에 숨은 잔챙이들이 모가지가 날아갈까 튀었다. 그래 놓고 디산이 다시 눈을 맞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안개 낀 눈을 했다. 젖은 나비 날개처럼 추욱 처진 속눈썹이 파르르 떨었다. 가관이었다. 


...먹을 게..., 사실 나 먹을 것도 없어가지구... 미안해요.

...

여기 사람 아니죠?

...

그럼 내가 먹는 건 더 안 되겠다. 음..., 사실 산 쪽에 뒤지면 아직 야생 열매 같은 거 있거든요. 괜찮으면 그거라도 먹을래요?


남자가 고분고분하게 설익은 산딸기를 받아먹을 때마다 디산은 괜스레 얼굴이 새빨개졌다. 뱀딸기보다 발가스레한 입술이 이따금 손가락에 닿을 때면 쥐고 있는 걸 죄 와장창 떨어트리곤 했다.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그럼 남자는 쳐다본다. 왜, 하는 물음을 얼굴 가득 띄우고.

디산은 그게 퍽 좋았다.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었다 하는 말간 얼굴을 보다 보면 누군가를 챙겨줄 수 있단 기분이 들어서였다. 제정신인 날이 몇 없는 엄마와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숨 쉴 구석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남자의 상처가 하나 둘 나을 때..., 또는 말문이 트일 때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이기적이지만은.

남자는 뜨문뜨문 그런 얘기를 했다. 그건 그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총, 칼, 죽음. 그리고 피, 상처, 사람을 죽이는 법. 또는 척추 어디를 누르고 팔꿈치를 어느 방향으로 꺾어야 최소한의 힘을 줄 수 있는지까지도. 그는 그렇게 말라 비틀어진 디산의 손목을 잡고 깃털보다 가벼운 숨소리를 속삭였다. 음절이 꺾이는 구간마다 채 닦아내지 못한 핏덩어리가 뭉쳤다. 디산은 그럼 애써 불안감을 무시하며 웃었다. 낀 손깍지 마디마디마다 뱀의 비늘을 닮은 서늘한 체온이 일었다. 디산은 애써 세뇌하듯 만트라 같은 말을 되뇌였다. 잇새로 비죽인 말 사이사이 언뜻 괴리감이 걸렸다.

온혈동물도 차가울 수 있지. 언제나 세상에 예외는 있지. 대신에 저 사람은 예쁜 눈을 가졌잖아. 

그치?




5.

총 잡아본 적 없지.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떠는데 누가 몰라. 목숨은 운에 맡기면 안 돼. 다음부터는 왼손으로 오른손 받치고 누구 쏘는지 제대로 봐. 눈 감거나 고개 숙이지 말고. 

...나 사실 다음 같은 거 없어요. 그게 마지막 총알이었어서.

...

그거..., 우리 언니가 나 쓰라고 준 건데, 사실 날 위해서 쓴 건 아무것도 없어요. 웃기죠. 하나는 내 동생 살리려고 쏜 거고. 두 번째는 우리 엄마가 술 취해서 잘못 쏜 거고. 마지막은 당신 구하려고 쐈어요. 내 인생은 원래 그렇게 어중간했고 남들 받쳐주거나 깔리는 데 썼으니까.

...

근데 별로 후회는 없어요. 우리 언닌 나랑 다르게 되게 예쁘고 당당하고 멋지거든요. 내 동생도 그렇고.

...

그쪽은 이렇게 어중간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탈선이니까 잘 살아야 해요. 여기 사람 아닌 것 같은데 나중 가서 나 살릴 일 있으면 한 번만 구해주구.

...약속할게.

뭘요?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너 살린다는 거.




6.

어렸을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자고 일어나니 사라진 거. 이름도 지어주고 정도 붙이고 내가 먹을 것도 반 잘라 먹이면서 어떻게든 살려냈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지니 좀 억울했다. 

그래서 디산은 남자가 사라졌을 때도 똑같이 억울했다. 

엄마 물건 건드렸단 이유로 뺨 후려맞고 먹을 거 쪼개서 먹여 살려놨더니 난데없이 사라진 거지. 사실 그럴 것 같았다. 남자는 두 눈을 씻고 봐도 새비지 스트리트에 어울릴 법한 얼굴이 아니었다. 휑하니 빈 방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래, 내가 살리긴 뭘 살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디이가 말한 건 자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을 넘을 거면 완전히 넘으라느니, 지옥도 천국도 아닌 게 결국 그 막나가는 끝에 있다느니..., 언니와 동생 샌드위치 사이 시들시들한 양배추인 디산은 다시 조용히 외줄에 탑승했다. 

디산이 간과한 건 하나였다. 한 번 외줄에서 내린 사람은 다시 외줄에 탈 수 없다는 거.


그러니까 니 동생이 내 대가리를 후리고 튀었다니까?

...디우 얘기라면 저도 몰라요. 걔는 원래 매일 사라졌다 가끔 나타나서...

씨발년이 뒤질라고.

...

꼴에 동생이라고 덮어쓰지 말고, 곱게 말할 때 털어놔.


대체 어딜 봐서 곱게 말한다는 거야 미친놈이. 디산은 조용히 혀 위에서 욕설을 굴렸다. 피비린내에 절여진 낱말들이 아우성을 쳤다. 저 솥뚜껑만한 손으로 이미 수차례 뺨을 쳤다. 피 냄새 자욱한 침이 고였다. 머리가 어질했다. 멱살이 잡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냥 죽으면 편하려나. 아둥바둥 살려고 구는 애들은 원래 다 죽잖아. 그러니까 나도 어디 한 번 죽을 기세로...,

탕. 마른 탄약 냄새와 소독약의 악취 같은 비명소리가 오감을 마비시켰다. 미처 생각을 마치지도 못했다. 멱살이 풀려난 디산이 맨 땅에 나동그라졌다. 이게 뭐야? 흙먼지 사이 겨우겨우 눈을 뜨니 눈앞의 남자가 별 비명이란 비명은 다 지르고 있었다. 탕. 왼쪽 무릎에 피분수 한 발. 탕. 오른쪽 무릎에도 피분수 한 발. 탕. 부러 금소를 빗겨간 총알. 탕. 두 번 더 빗겨간 총알. 고통에 눈깔이 돌아 꿈틀대지도 못하는 몸에 대고 한 번 더 탕. 

심장도 머리도 아니다. 배야.

그때 언뜻 전류가 흐르는 감각이 뇌리를 지졌다. 디산은 디이가 키득대며 말해준 것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디산아 그거 알아? 총은 씨발 배때지에 맞는 게 제일 아파. 내가 맞아봐서 안다니까. 대가리에 맞으면 걍 콱 하고 뒤져서 암것도 모르는데 배에 맞으면 구라 아니고 장기 끊겨서 산낙지처럼 꿈틀대는 게 그대로 느껴지거든. 그래서 아저씨랑 일하는 남자 중에 다리 쏴서 못 도망가게 한 다음에 배만 골라서 쏘는 미친 새끼 있대. 그게 젤 아프니까.

...무섭네.

암튼 그러니까 너도 총 쏠 때 대가리 못 맞출 것 같으면 배라도 맞춰. 그리고 존나게 튀어. 알겠지?


잠시만..., 그녀가 숨을 히끅댔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 애써 현실을 거부했다. 디산. 느리고 조용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 탄약과 연초 냄새에 뒤엉킨 음성이 흙먼지를 파고든다. 아. 고개 든 시야에 디산이 며칠을 본 얼굴이 담겼다. 반듯하고, 고요하고, 조용한..., 조용한...


약속 지키러 왔어.

...어... 어... 어어...


남자가 걸어올 때마다 찌익대며 살점이 구두 밑창에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조심스럽게 디산의 몸을 감싸 들어올렸다. 황홀하게도 미려한 얼굴에 금이 돋았다. 화약과 쇠비린내로 점철된 손이 천천히 디산의 뒷목을 쥐었다. 고개 숙인 그가 짓무른 눈가에 느릿느릿 입술을 맞췄다. 물컹하고 축축한 감각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러트렸다. 

디산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내 목에도 이미 독니가 박혔을 지 모른다고. 어쩌면..., 어쩌면.


[방탄소년단/김석진] 디산 | 인스티즈

...가자, 디산.


내가 언니보다 더 무서운 남자에게 잡혔을 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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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2.238
와ㅠㅠㅠ분위기대박
완전좋아요ㅠㅠ 이번화 석진이완전치명적 ㅠㅠㅠ
치여서 일어날수가없네요ㅜㅜ 다음화기대할개요’ㅜ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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