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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낌의 공동체' 2ND PROJECT



 [여섯번째. 열대야 by 스페스]











"엄마 나 간다."
"딸, 토스트, 토스트."
"아, 안 먹는다니까."


토스트와 우유를 손에 들고 문 앞까지 나온 엄마를 간신히 돌려보내고 대충 구겨 넣은 운동화를 고쳐 신는 동안 시선은 내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숫자 10에 멈춘 빨간 글씨를 본 순간 정신이 바짝 든다. 휴대폰 액정을 흘끗 보니 7시 30분. 며칠간 관찰한 결과가 맞다면 바로 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안에 그가 서 있어야 한다.


10, 9, 8

천천히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멈추자 심장이 터질듯 뛰어댄다.


팅-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하얀 교복차림의 그. 손에 쥔 휴대폰을 바라보던 그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순간 눈이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안에 그가 있기를 수없이 바래왔건만 막상 등장하니 사고회로가 정지된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스르르 문이 닫히려했다. 그가 급하게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뭐야. 매몰차게 닫혀버린 엘리베이터를 보니 헛웃음이 난다. 뭐지? 빨리 안탄다고 닫아 버린 건가. 잘생기면 저래도 돼? 얼굴 믿고 저래도 되는 거냐고! 아니, 혹시 내가 너무 이상한 표정을 지었나. 이미 닫혀버린 엘리베이터는 1층을 향해 내려간 지 오래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씩씩거리다가 다시금 내림 버튼을 누른다. 선명하게 깜빡이던 붉은색 숫자가 다시금 올라오더니 금세 우리 층에 멈춰 섰다. 텅 빈 엘리베이터 안을 보니 자꾸 화가 치민다. 문을 빵 차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그 남자를 씹어대는 사이 금세 1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가 다시금 도착을 알렸다.


“하여간 잘생긴 것들은 얼굴값...”


열리는 문틈으로 보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다. 방금 그 남자. 나를 내려다보던 그 잘생긴 남자가 귀에 꼽은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미안해요. 열림을 누르려던 게 그만 닫힘 버튼을...”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를 올려다보다가 다시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 말 하려고 여기에...”
“네.”


쌍욕을 하며 내려왔는데 이럴 수가. 얼굴값 한다는 말은 취소. 그가 빤히 나를 내려다보는 바람에 자꾸 숨이 턱턱 막혀 온다. 찌는 듯한 더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앞에 선 이 사람 때문에. 아, 물론 찰나의 순간 가슴팍에 놓인 명찰을 훔쳐본 건 비밀이다. 김석진. 이름도 얼굴만큼 참 반듯하네.


“그니까 그 말 하려고 안가셨다고요?”
"오해할까봐"
"아, 실수로 그럴 수도 있죠."


아니 너는 그래도 돼요. 얼굴값 해도 돼요! 순식간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온다. 자꾸 번지는 미소때문에 입술을 꾹 물어본다.


우리, 아니 그 사람과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산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서 나란히 버스를 기다린다. 그와 마주친 지 오늘로 세 번째. 우리 학교 교복은 아닌 걸로 보아 어디 주변학교를 다니는 모양인데 어딘지는 도통 알 길이 없다.


휴대폰은 요란하게 폭염주의보를 알리는데, 푹푹 찌는 날씨와 다르게 기분은 더 없이 상쾌하다. 한 걸음 앞서 걷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만 심장이 눈치 없이 내달린다. 신이 한 땀 한 땀 빚은 듯 완벽한 얼굴과 교복도 수트로 만들어버리는 넓은 어깨. 아, 인간 비타민이 따로 없네.


정류장에 나란히 서서 멋쩍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훅 불어오자 그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 마저도 화보 같은 게 함정이지만. 단 둘뿐인 정류장에서 딱히 대화도 하지 않고 서있으려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괜스레 휴대폰을 쳐다봤다가 그를 곁눈질 하다가,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버스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버스로 향하던 그가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내게 슬쩍 목례한다. 그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아주 천천히 시야에 담겼다. 살짝 지은 미소가 잔상처럼 남아 머릿속에서 흩어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느낌이 온다. 저 사람이 이사 가지 않는 이상 내 남은 고등학교 성적은 말아먹었음을. 한참 그가 타고 간 버스 뒤꽁무니를 바라보다가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내가 말했던 존잘 엘리베이터남 이름 알아냄!!!!! 오늘 대화도 함!!!!!!!」

호석이에게 카톡 하나를 남기고는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는다. 헐. 어떡하지, 너무 좋아.





* * *






그 이후로도 간간히 마주쳤지만, 그는 칸트의 현신은 아니었나보다. 시간을 칼같이 맞춰 엘리베이터를 탔건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등교하는 날이면 기분이 바닥끝까지 내려앉고는 했다. 아주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가 내림 버튼을 누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와 마주치는 날은 점점 손에 꼽았다. 그런 날은 우울함에 자율학습이고 뭐고 하루를 그대로 날리기 일쑤였다.


연습장에 빼곡하게 ‘김석진’ 세 글자를 반복해서 적다가 책상에 축 늘어지니 옆에 앉은 호석이 나를 곁눈질 하고는 말했다.


“야, 너 곧 고3이야.”


그래, 계절이 두 번 바뀌면 고3이지. 근데 인생에 공부보다 중요한 게 나타났는데 어쩌겠냐. 에어컨 바람을 피해 무릎담요 사이로 얼굴을 배꼼 내밀자, 녀석이 고심 끝에 한마디를 내뱉는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그 사람 사는 집에 한 번 가보든가. 뭐 빌린다고 핑계를 대든지.”
“미쳤냐?”
“도와주려고 해도 뭐라 그래. 아, 근데 오늘 날씨가 구려서 그런가, 공부에 집중이 안 되네.”
“어제는 많이 먹어서 집중이 안 된다며.”


핀잔을 두고 누워 창밖을 흘끗 보니, 녀석의 말대로 먹구름이 몰려온다. 기분도 꿀꿀한데 날씨마저 구려. 딱 10층 남자 얼굴을 보면 기분이 맑아질 것 같은데……. 미쳤냐고 딱 잘라 말했지만, 자율학습 시간 내내 호석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한번 가볼까. 아니지, 미쳤지. 정확한 호수도 모르는데. 아니, 그래봤자 두 집중 하나인데 정신 나간 척 벨을 한 번 눌러봐? 아니면 현관 앞 의자에 앉아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볼까. 이 더위에 쪄죽을 것 같아서 일단 패스.


하교 후 버스에서 조차, 그 미친 생각의 불씨는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을 알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7월 말인데 이 여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고민하며,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한창 무슨 아이스크림을 골라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갑작스레 인기척이 느껴진다.


“아이스크림은 돼지바지. 하지만 이렇게 더울 땐 탱크보이.”


갑작스레 냉동고를 열어 아이스크림을 꺼내든 남자가 내 앞에서 씩 웃는다.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자율학습 시간 내내 떠올렸던 그 잘생긴 얼굴이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 웃고 있으니.


“원 플러스 원이네. 하나 먹을래?”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나는 이미 꼭지를 딴 탱크보이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원래 탱크보이 내 돈 주고 안사는 아이스크림 일순위인데, 지금은 아이스크림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10층 남자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나란히 걷는 사이 그가 묻는다.


“역시 더위에는 탱크보이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하하하 웃어버리는 그의 모습이 낯설다. 그간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10층 남자는 정말이지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더울 때는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텁텁하고, 이렇게 얼음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최고라니까.”


  그의 심오한 아이스크림 개론을 시작으로 우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덕에 그는 현재 고3으로 인근 남고에 재학 중이며, 얼마 전에 이 아파트로 이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이런 외모를 미리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가는 그와는 달리, 나는 단지를 걷는 내내 덜덜 떨고 있다. 대화를 하다 순간 마주치는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자꾸만 헉 소리가 나온단 말이지. 땡볕에서 걷다보면 땀도 좀 나고, 머리도 달라붙고 얼굴도 빨갛게 익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인간미 없게 잘생기고 난리야. 나름 천천히 걷는다고 애썼는데도, 금세 아파트에 다다랐다.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자, 뒤에 선 그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린다.


“문 다 열고 다니네.”
“네?”
“수학 공부 열심히 하나보다. 죄다 수학 문제집이네.”


그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등 뒤로 맨 가방이 들리는 듯 했다. 곧 자크를 잠가준 그가 열린 현관을 보며 턱짓을 한다. 먼저 들어가라는 그의 제스쳐에 앞질러 걸었다. 칠칠맞게 가방 문이나 열고 다니고, 민망하기 그지없다.


“공부 열심히 하나보나 보네.”
“제가 수학 성적이 잘 안 나와서요.”
“뭐가 제일 안 되는데? 내가 한 수학 하거든.”


뻔뻔하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또 웃음이 났다. 얼굴은 순정만화인데 성격은 장르가 좀 달라서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곧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추고, 아쉬움을 남기고 내린다.


“저기요!”


급하게 내지른 내 목소리에 그가 다급하게 버튼을 누른다. 다행히 이번엔 열림버튼. 철컥 열린 문 사이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묻는다.


“그, 그 물어보러 가도 돼요? 수학문제.”
“그래, 와. 1001호야.”


그가 손가락을 위로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인다. 문이 닫히고 나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입을 막은 채, 복도에서 방방 뛰어도 이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예!






* * *






굳이 뭘 빌려달라고 할 필요도 없이, 떡을 돌릴까 말까 했던 고민이 무색하게 나는 그 날 이후로 몇 번이나 석진오빠의 집을 방문했다. 물론 수학문제를 핑계로. 작은 책상에 마주 앉아있으려니 떨리기 그지없다. 하얀 교복차림의 오빠가 바로 눈앞에 있다. 풀어보라고 준 문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자꾸만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잠깐만 있어봐.”


아 정말 이게 현실인가요. 깔끔하게 정돈 된 방안을 둘러다보고 있으려니, 오빠가 금세 돌아와 내게 탱크보이 하나를 건넨다.


“먹으면서 해.”
“근데 제가 오빠 공부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아닌데. 나는 네가 더 걱정인데.”
“왜요?”
“내 얼굴 보느라 집중을 통 못하는 것 같아서. 아하하하하.”


아니, 참 볼수록 적응이 안 되는 캐릭터란 말이지. 괜스레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니, 그가 제 손에 들린 탱크보이 꼭지를 따서는 내게 건네고는 내 손에 쥔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간다.


“김 묻었지?”
“네?”
“잘생김.”


뻔뻔하게 말을 마치고는 또 고개가 넘어가라 웃는 통에 나까지 헛웃음이 난다. 한참을 들썩이던 오빠가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자, 이제 집중해.”


고개를 파묻고 문제를 보자니 자꾸 오빠가 신경 쓰인다. 푹 숙인 채 오빠에게 향해있는 정수리가 신경 쓰이고, 오빠가 풀어보라고 시킨 문제를 틀리면 쪽팔려서 어쩌나 싶고. 아무래도 떡을 돌리는 편이 나을 뻔 했어.


“여기 문제 보면 에프엑스가 2차일 때 엑스제곱 플러스 에이엑스 플러스 2라고 하면 엑스에 1을 대입해봐. 그럼 모순이지.”


진지하게 문제를 설명하는 오빠의 풀이 방식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연습장에 슥슥 적어 내려가는 글씨도 마찬가지다. 꽤나 가까운 곳에 있는 오빠의 모습에 또 정신없이 맥박이 빨라질 뿐이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풀라고 했지?”


한창 적어 내려가던 수식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통에 숨이 턱 막혀온다. 답을 말하라는 듯 빤히 내 얼굴을 보던 오빠가 갑자기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펜을 쥔 반대 손으로 내 이마를 장난스레 때리려다가 멈추고는 머리를 헝클인다. 심장이 쿵 곤두박질친다.


“집중하랬지.”


보나마다 또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다. 당황해서 어버버하는 사이 오빠가 문제를 다 풀고는 고개를 쓱 빼고 내게 말했다.


“문제 물어보려고 온 거 맞지?”
“네? 어……. 모르니까 물어보러 왔죠. 제가 수포자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니 오빠가 또 웃음을 참더니 말을 잇는다.


“그래. 그럼 집중해서 꼭 수학 성적 올리기.”
“근데 저 진짜 오빠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고3인데…….”
“나 이번 주에 수시 결과 나와서 이제 자유야.”


어쩐지, 요즘 매일 아침 안 보인다 했더니, 여유롭게 수시에 합격하셨다 이거군. 그럼 이제 부담 없이 와도 되겠다는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현관까지 마주나온 오빠를 돌려보내고 일부러 계단으로 걸어 내려간다. 괜스레 집에 바로 들어가기 싫어서 어물쩡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아 어쩌지, 진짜 너무 좋아.






* * *







친해진 이후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오빠 덕에 전화번호를 얻고 나니, 이제 손에서 휴대폰을 뗄 줄 모른다. 카톡 프로필에는 ‘김석진’ 세 글자뿐이고 프로필 사진도 설정되어 있지 않는데, 틈만 나면 습관처럼 카톡을 눌러대니 옆에 앉은 호석이가 끌끌 혀를 찬다.


“그 사람은 수시 합격했다며, 너 재수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안 그래도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치는데, 정말 재수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 형 남고라며? 대학가면 주변에 여자들이 가만 안 둘 것 같은데 우리 수포자 지금이라도 이 악물고 공부해야겠네.”


호석이는 놀린다고 하는 말이었겠지만, 갑작스레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3으로 지내는 동안, 오빠 주변을 둘러싸고 있을 여자 동기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하다. 아... 오빠가 대학을 안 갔으면 좋겠다. 얼굴도 잘생긴 사람이 왜 공부도 잘해서 벌써 수시를 붙고 난리야. 하루 종일 또 그 걱정에 공부를 한 자도 못하고 학교 밖을 나선다. 아, 이를 어째.

오빠 이름을 누르고 카톡창을 켰다, 껐다 수십 번을 반복한다.


「오빠는 이상형이 뭐예요?」
「오빠 나랑 사귈래요?」


뻘 소리를 썼다가 지웠다 반복하니, 옆에 앉은 호석이가 또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나 진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그렇게 불안하면 사귀자고 하던가.”





* * *






분명히 다시는 수학문제를 묻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오빠가 보고 싶어질 때면 문제 몇 개에  별표를 치고 10층으로 달려간다. 분명히 저번에 알려줬던 건데 또 모른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오빠를 보면 이제 그만 가야지, 하는 다짐은 다시 쏙 들어가버린다. 매일 물어보는 열정이면 수학성적은 고공행진을 해야 마땅하건만, 잿밥에만 관심을 두어서 인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그러면 또 어때, 이제 아무렇지 않게 카톡 할 정도로 오빠랑 친해졌는걸. 그러나 자꾸만 마음이 커져갈 수록, 호석이의 말이 떠올라 또 애가 탄다.






* * *







동생과의 내기에서 진 탓에 밤공기를 마시며 편의점으로 향한다. 에어컨 밑에서 뒹굴 거리다가 나가려니 귀찮아 죽겠어서, 목 늘어난 티셔츠를 대강 주워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집밖을 나섰다. 지난 며칠 열대야로 잠 못 이뤘는데, 오늘은 답지 않게 날씨가 꽤 선선하다. 습관처럼 아파트 건물 10층을 쳐다본다. 오빠 방 불이 꺼져있는 걸 보니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스크림을 바구니에 넣고 돌아서려다 탱크보이 하나를 집는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사먹던 아이스크림을 이제는 입에 달고 살다니, 자꾸 헛웃음이 난다. 아이스크림을 쓸어 넣고 매장 안쪽에 위치한 냉장고에서 탄산음료를 뒤지고 있는 사이 딸랑- 소리가 난다. 반사적으로 문 쪽을 쳐다보다가 입이 떡 벌어진다.


석진오빠의 등장에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는 냉장고 방향에 딱 붙어 섰다. 민낯에 틴트도 안 발랐는데. 게다가 목 늘어난 티셔츠. 아, 절대로 마주치면 안 되는데. 제발, 오빠가 제발 못 알아보게 해주세요. 그러나 내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점점 그와의 거리가 좁아진다.


“어? 난 사이다 보다 콜라가 낫던데. 코카콜라.”


하필 사이다를 집고 있던 내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야속하다. 모른 척 해주라, 좀. 여전히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사이다를 내려놓고 다시 콜라를 집는다.


“그렇지. 탄산은 코카콜라지.”


볼캡을 한껏 내려쓴 터라 오빠의 얼굴은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웃음기 서린 그의 목소리가 귀를 맴돌 뿐이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황급하게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뛰듯이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아, 하필 이 꼴로 마주쳐.


“수포자!”

 
뒤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나마나 석진오빠다. 더 빠르게 걸음을 옮기지만 타닥타닥 달려오는 그의 뜀박질에는 역부족이다. 아 제발. 굳이 왜 아는 척이냐고요.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오빠가 내 앞에 서더니 손을 내민다.


“카드 놓고 갔어.”
“아……. 고마워요.”


급하게 나오느라 놓고 온 카드를 받아들고는 다시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볼캡 덕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또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들키고 말았을 테니.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갑자기 오빠가 무릎을 굽히고는 모자 아래의 나와 눈을 맞춘다.


“왜 그렇게 꽁꽁 숨겨.”
“그게 지금 쌩얼....”
“평소랑 똑같은데?”


웃으며 놀릴 줄 알았는데, 오빠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내 심장은 또 제어를 못하고 쿵쾅쿵쾅 뛰어댄다. 이러다 못쓰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다. 자꾸만 달아오르는 내 얼굴과는 달리, 여름밤의 공기는 꽤나 시원하다.


“아, 하나 드실래요?”


봉지에서 주섬주섬 음료수 하나를 꺼내자, 그가 시원하게 캔 뚜껑을 따고는 내게 건넨다. 그리고는 내 손에 쥔 음료수를 가져간다. 매너가 습관인 것 같다. 그런 그의 행동에 또 마냥 두근거린다. 이제 오빠가 대학 가면 여자 동기들에게 이렇게 해주려나. 아 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괜히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푹 숙인채로 걸어가다가 갑작스런 오빠의 말에 걸음을 멈춘다.


“아 배불러. 나 저녁 많이 먹었는데, 여기 걷다 들어갈래?”


아파트 주변으로 난 트랙을 나란히 걷는다. 여름 밤 솔솔 부는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떻게 걷고 있는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게 저녁 메뉴를 나열하며 또 다시 그만의 음식 철학을 설명하는 오빠를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이리도 설레는 데, 오빠는 별 생각이 없겠지.


“요즘 학교 잘 안 나가면 뭐해요?”
“오늘은 같은 대학 수시 합격한 동기들 만나서 같이 저녁 먹었어.”
“아.... 동기들 많아요?”
“음, 꽤 많더라.”
“남고에만 있다가 여자동기 보니까 좋겠다?”
“어. 왜 남고 다녔는지 억울하던데?”


너무도 솔직한 답에 또 현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고3이고, 오빠는 이제 대학생. 이제 열대야는 끝이라는데, 나는 후덥지근한 땡볕 한 가운데 있는 것 마냥 답답한 심정이다. 볼캡을 쓰고 있길 다행이다. 괜스레 눈이 벌게지려는 걸 꾹 참고 그와 함께 걷는다. 혹시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져 나올까봐 아무말 없이 걷고 있자니, 그가 볼캡 앞을 장난스레 툭툭 친다.


“하지 마요.”


내 앞에 딱 멈춰 선 오빠가 눌러쓴 모자를 슬쩍 들어올린다. 볼품없이 눌린 머리가 신경쓰여 모자를 빼앗으려 고개를 들자, 오빠와 눈이 마주친다.


“걱정이야? 내가 대학가서 여자동기들이랑 친해질까 봐?”


갑작스레 진지한 얼굴로 묻는 통에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분명 잔뜩 할 말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로등 아래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얼굴에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다.


“난 너랑 친해지고 싶은데.”









-



안녕하세요. 스페스입니다.

공지를 올리고 이렇게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심지어 망글을 가져왔네요....ㅠㅠ

갑작스레 출장에 끌려갔다 오는 바람에 많이 늦었습니다.

함께 하시는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정말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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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막냉꾹]
똑똑한 석진 선배 이미지와 재밌는 맏내 이미지가 다 살아있어서 좋아요 ㅠㅠㅠ 석진이 실제 모습이 다 담겨있네요 ㅠㅠㅠ 석진센빠이 ㅠㅠㅠ

6년 전
독자2
으어ㅠㅠ 대박이네요ㅠㅠ 저희 아파트는 이상한 사람 천지던데ㅠㅠ 작가님 이번편도 정말 잘 읽고가요! 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3
작가님!!너무 오랜만이에오 ㅠㅠㅠㅠㅠ 석진이 젠틀한거랑 스윗한거에 한번더 치이고갑니다 ㅠㅠㅠ왠지 딱 이번 티저사진이랑 찰떡궁합인 분위기네요!!!><
6년 전
독자4
11023이에요ㅠㅠㅠㅠ 저희 아파트에 석진이가 살았다면..... 전 아마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치자마자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네요ㅠㅠㅠㅠㅠ 석진이 이미지랑 너무 찰떡인거 같아요ㅠㅠㅠㅠㅠㅠ 너무 스윗하고ㅠㅠㅠㅠㅠㅠㅠ 잘 읽고 가요❤️❤️
6년 전
독자5
새싹이입니다!!!석진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선배미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6
뷔땀눈물
6년 전
독자7
아..스페스님.. 아아.. 제 심장 저격하셨답니다.. 릴레이 글 참 좋은것같아요 이런 보석같은 작가님들을 많이 알게되고,, 난 또 우리 보석작가님들 글 찾으러 다니고.. 인생베팅 각인데요 사랑해요
6년 전
독자8
오 지쟈스 석진오빠 혹시 나한테 마음있어요???그렇다면 3초 줄테니까 빨리 고백하고 꼭 안아주세요 오빠 사랑해요 바람ㅊ피지 말고 우리 애는 음악시켜요 ㅎㅎ❤️❤️
6년 전
비회원199.183
[정꾸꾹]입니다!
왕 설레미설레미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뭔가 딱 제 나이라 더 설레요ㅠㅠㅠㅠㅠㅜㅜㅜㅜ우리 아파트에는 왜 없 저런 고3오빠??!??!?
저도 수학 좀 알려줘요ㅜ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9
작가님 글을 정말 애정하는 독자입니다.ㅠㅠ 오늘 쏘 스윗한 석진이를 잘 표현해주신것 같아서 열대야에 한 번, 작가님 글에 한 번 녹아내린 것 같아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10
벽성입니다!
으어누ㅜㅜㅜ 달달해요 석진선배ㅠㅠ

6년 전
독자11
데이지입니다!! 오늘도 후덥지근한 여름이었는데 이 글을 보니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어요ㅠㅠㅜㅜㅠㅠ 정말 한살 오빤게 뭐라구 내 맘을 왜 이렇게 흔들어놔ㅠㅜㅜ
6년 전
독자12
10041230

오 마지막 말 뭐야ㅠㅠㅠㅠ 제가 대신 죽을 뻔햇스요..

6년 전
독자13
핫초코
왜 난 수시 붙었다는 말이 더 와닿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짜 저건 부러울 일이야... 저런 얼굴에 저런 머리라니...박수짝짝
친해지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는 안되니?ㅎ?

6년 전
독자14
구구에요!
망글이라니... 그 어린 소녀의 풋풋한 짝사랑이 쌍방이 되는 과정이 넘나 귀엽고... 풋풋하고... 넘나 좋네용ㅇ!

6년 전
독자15
석진오빠 친해져요ㅠㅠㅠㅠ진짜 잘생겼는대 웃기고 이런 최고의조합이ㅠㅠㅠ
6년 전
독자16
작가님너무오랜만이예요!!!!!망글이라뇨!!!!!저완전집중해서읽고석진이마지막대사보고다음편언제나오냐고현타느끼고슬퍼하고있었는데!!!!!작가님천재짱짱걸뿡뿡사랑해요다음편도기대할게용♡♡♡
6년 전
독자17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이에여
청춘물 ㅠㅠㅠ 둘이 풋풋하고 귀여워요 ㅠㅠㅠㅠ
석진이도 여주한테 마음이 있겠지?! 하면서 기대하고 봤는데 마지막에 크.. 완전 짱인데요 ㅠㅠㅠ 망작이라뇨 ㅠㅠㅠㅠㅠㅠ
브금도 통통 튀는 학창시절이 보이는 느낌이에요!
글 잘 읽었습니다!

6년 전
독자18
두유망개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진짜 대박 ㅠㅠㅠㅠㅠ 석진이 선배미 뿜뿜 ㅠㅠㅠ
6년 전
독자19
윤기야입니다 뭔가 늘 글에서 선배미 뿜뿜하는 석진이만 보다가 이렇게 맏내미를 풍기는 석진이를 보니까 더 반갑기도 하구 ㅠㅠ 근데 마지막 멘트에 제 심장은 또 바스라지구...
6년 전
독자20
와 선배미 뿜뿜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설레는 것 같아요 작가님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가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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