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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507l 2

제 컴퓨터에 묵혀둔 소설을 조금씩 올리고 있어요 ㅋ

수위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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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정말 이런 이야긴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내가 여대에 시험 봐서 합격한 건 알고 있지? 근데 그놈의 학교가 입학식도 안했는데, 아니지. 고등학교 졸업식도 안했는데 관악합주 캠프를 갈 거니까 오라고 연락이 왔지 뭐야. 처음엔 기대감보다 귀찮단 생각이 더 컸어. 그런데 출발하는 날 보니까 우리 학년뿐만 아니라 선배들까지 죄다 예쁜 거야. 내가 여덕후인건 너도 잘 알잖냐. 출발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예쁜 친구들과 말을 트며 친해지기 시작하니까 점점 이 캠프가 설레기 시작했었어. 그런데 우리 앞을 지나쳐 가는 어떤 여자가 진짜 완전 연예인인거야. 악기에 짐 가방을 끌고 오케스트라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 저 사람이 내 선배구나, 앞으로 저 선배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겠다 싶어 혼자 헤벌쭉해져서 캠프 장소로 출발했어. 



 캠프 장소에 도착해서 4학년 관악 부장 선배가 오티를 진행하고 나 같은 1학년들은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어. 그때 난 아까 보았던 그 울트라초특급 예쁜 선배를 눈으로 찾고 있었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 추리닝으로 갈아입고도 그 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 선배 옆에 찰떡같이 붙어 앉아있는 사람이 글쎄, 헬멧이라도 쓴 것처럼 완전 동그란 버섯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미소년 같으면서 미소녀 같은, 알아듣겠어? 확실한 건 완전 귀여우면서 완전 섹시하고 완전 훈내 터지는, 아 정말 이 선배는 내가 말로 백만 번 설명 하는 것보다 너가 직접 봐야해. 여튼 두 사람 모두 정말 미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어. 난 그때 속으로 정말 할렐루야를 외쳤다니깐. 내가 여자 보면서 햙햙거리는거 듣고 싶지 않다고? 잠깐 기다려봐. 내가 하려는 말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미안 서두가 너무 길었지? 본론으로 넘어갈게. 그 두 선배가 색소폰 전공인데, 처음 내가 봤던 여신언니는 이름이 하지원, 4학년이고 버섯머리라는 그 미소년 같은 언니는 이름이 배두나, 3학년이더라고. 이제부터 편하게 지원언니 두나언니 라고 말할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 두 언니들이 의심스러워서야. 내가 원래 훈훈한 여자 두 명이 붙어 있으면 자동으로 알렉스 비지엠을 귓가에 까는 경우가 있어. 그건 나도 인정해. 내가 좀 덕후냐? 씹덕후지. 하도 이 여자 저 여자 엮어서 글이며 사진이며 올라오는 헤볼 카페에서 많이 놀아서 내가 괜히 두 사람의 작은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 한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나 말고도 많은 1학년 애들이 두 사람한테 자꾸 눈이 간다면서 둘이 너무 꽁냥꽁냥 거리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 왜 1학년끼리 모이면 선배들 이야기부터 하잖아, 우리가 캠프 가 있는 동안 정말 모였다 하면 지원언니랑 두나언니 의심스럽다 뭐 이런 이야기 밖에 한 기억이 없어. 물론 다른 이야기도 했겠지만 내 기억은 그 두 사람 이야기 한 것 밖에 안나. 아, 대체 어떻길 래 다들 그렇게 말했냐고? 너도 이제 슬슬 궁금하구나? 음, 에피소드가 너무 많은데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까나... 



 아 처음 오티 때. 1학년 들이 한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면 4학년 언니들이 술을 한잔씩 따라줬거든. 그럼 술 받고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장기자랑을 하고, 애들이 엄청 웃기더라고. 근데 둘은 장기자랑도 안 보고 계속 서로만 바라보고 대화하기 바쁘더라. 대화 하는 동안 계속 지원언니가 두나언니의 머리를 만지작만지작, 손을 조물딱조물딱, 얼굴은 쓱쓱 훓고, 진짜 지원언니가 계속 두나언니한테 손이가고 두나언니는 익숙하다는 듯이 가만히, 계속 할 말 하고 있고.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1학년 자기소개가 끝난 거야. 그런데 관악부장 언니가 갑자기 두나언니를 불렀어. 너도 한잔 받아라. 뭐 그런 식으로. 그 말을 듣고 두나 언니가 지원언니를 보고 울상을 지어 보였는데 그건 또 어찌나 귀엽던지! 내가 대신 술 잔 받아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니깐? 그렇게 울상을 짓는 걸 보고 지원언니는 엉덩이 토닥토닥거리면서 잘 받아 마시고 와 하는데 그건 또 얼마나 예쁘던지. 아 정말... 아 재미 없다고? 미안 내가 너무 감상에 젖었었지. 조금만 더 들어봐. 아직 나 할 말 산더미 같단 말이야. 계속 이어 갈게? 어디 까지 이야기 했지? 아 맞다 술 잔 받으러 나갔지. 



 음, 술 잔 주는 관악 부장언니가 사실 두나언니가 이번 학기 휴학을 했는데 교수님이 꼭 와주면 좋겠다고 부탁해서 온 선배라고, 아 그날이 화이트데이였는데 여대여도 사탕 줄 선배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라는 거 있지? 왜 여대면 남자가 없어서 사탕 줄 선배 없다고 그러잖아. 근데 두나언니한테 주면 된다고 그런 이야길 농담으로 하는데 내가 그 대목에서 너무 빵 터져 웃는 바람에 눈치 보였어. 하여간 그렇게 휴학생인데 와서 고생하게 생겨서 어쩌냐 뭐 이런 식으로 부장언니가 이야기 하니까 두나언니가 완전 매력 터지게 웃으면서 고생해서 스트레스 쌓이면 지원언니 괴롭히는 걸로 풀죠 뭐. 하고 쿨하게 대답하는 거 있지? 아 진짜 내가 망상을 안 하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 대사 딱 듣자마자 상상의 길이 막 터지는 거야. 혼자 이상한 상상이 계속 되면서 자꾸만 승천하려는 광대 붙잡고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근데 내 옆에 애도 나랑 좀 비슷한 상상 했는지 걔는 글쎄, 얼굴이 다 빨개져 있더라니까. 



 이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그럼... 아, 한번은 합주 끝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지원언니랑 두나언니가 나란히 복도를 걷고 있는 거야, 둘이 대화하는 내용이 들렸는데 오늘 파트연습 하냐고 두나언니가 물어보니까 지원언니가 없으니까 쉬라고 하는, 뭐 그런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었어. 지원언니 방은 2층이고 두나언니 방은 3층이라 복도를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은 처음 봐서 난 내 방에 도착했는데도 안 들어가고 계속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어. 참고로 나도 2층에 방이 있었어. 그니까 거기가 2층 복도인 셈이지. 근데 지원언니 방 문 앞에 서서 지원언니가 방에 들어가는 거 보고 두나언니가 다시 돌아서 계단 쪽으로 향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방문까지 데려다 주는 사이야? 오오오오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대박은 그 다음에 일어났어. 방에 들어갔던 지원언니가 다시 방 밖으로 나오더라고.

  


"두나야."

"네?"

"우리 방에 애들 없네."

"아 그래요?"

"어. 우리 방으로 와라."

"음, 나 잘건데..."

"우리 방에서 자."

"...휴, 알았어요. 이거 짐만 제방에 두고 올게요."

"아아앙 싫어, 그냥 우리 방에 놔둬도 되잖아. 빨리이이-"

"알았어, 알았으니까 어울리지 않게 앙탈 부리지 말아요."

 


 이게 진짜 혼날래? 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두나언니 팔뚝을 조금은 괴팍하게 후려치는 지원언니를 보고 난 진짜 망상이 선을 지키지 못하고 갈데까지 갔다니까? 지원언니가 그렇게 애교 철철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데!! 둘이, 단 둘이!!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둘이 방에 들어가고 문 잠기는 소리도 들렸다니까? 이러니까 내가 의심을 안 하고 배겨? 배기냐고! 이제 좀 내 말에 흥미가 생기니? 아 더 이야기 해 줄까? 잠깐만 기다려봐.. 뭔가 더 있는데 내 기억력이 좀 휘발성이여야 말이지. 분명 엄청 많고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너가 듣고 싶다면 좀 더 생각해 볼게.


 

2



 그렇게 현기증 나니? 처음에 관심 없을 땐 언제고, 빨리 기억해내라니. 그렇게 말한다고 안 나던 기억이 덜컥 나는 줄 알아? 뭐라고? 하나씩 물어 봐라 좀. 아 그 방에 귀대고 엿 듣지 않았냐고? 솔직히 마음은 한걸음에 뛰어가서 당장 방문에 귀대고 안에서 둘이 뭐하나 확인했을 거야. 마음 같아선 나도 정말 그 방에 CCTV라도 달고 싶었다니깐?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했다가 걸리면? 방문에 귀를 대고 있는데 안에서 언니들 나와 봐. 아니면 다른 언니들이 그 복도 지나가면서 날 보게 되면 난 어쩌라고. 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스토커다 뭐다 이상한 소문 도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엄청 꾹꾹 눌러 참았어. 아 그럼 딴 얘기 더 해보라고? 음.. 뭐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아? 첫 합주 연습 때. 지원언니가 소프라노 색소폰을 새로 샀나봐. 그래서 합주 시작 전에 몇 번 불어보더니 도저히 못 불겠다면서 두나언니 연습하는 데 막 방해를 하는 거야. 악기 부는데 옆에서 어찌나 쫑알쫑알 거리고 투덜투덜 짜증을 부리던지. 지원언니가 하니까 귀엽지 내가 그랬어봐, 싸대기 맞았을 걸? 하여간 처음엔 시크하게 그러던 말던 신경 안 쓰고 악기만 불고 있던 두나언니가 결국 연습하던 것을 멈추고 지원언니를 보면서 뭐라고 이야기 하는 거야. 잘 들리진 않았는데 그거 부는 게 그렇게 힘드냐? 뭐 이런 말을 한 것 같아. 두나언니 말이 끝나고 지원언니가 고갤 끄덕였거든. 두나언니는 또 무슨 이야길 하면서 자기 악기를 스탠드에 걸어 놓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지원언니 악기를 받아서 불어보기 시작하는 거야. 이게 뭐 어쨌냐고? 지금 몰라서 물어? 간접키스잖아! 내가 지금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 떨고 있는 걸로 보이니? 아무렇지 않게 악기 불어보고 고갤 갸웃 하더니 다시 지원언니 손에 쥐어 주는데 지원언니 역시 자연스럽게 악기를 불어봤다니까? 보통 남의 악기 불어볼 때 피스를 물로 행군 다음에 불어 본단 말이야. 근데 그렇게 한 악기를 둘이서 아무렇지 않게 번갈아 가며 불어 본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렇게 해왔다는 뜻이지 않겠어? 둘이 간접 키스 말고 정말 키스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니까?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그렇지? 역시 넌 나랑 친구 일 수밖에 없어.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의심해 볼 가치는 있다고 난 믿어.



 그리고 교수님이 오셔서 합주가 시작되었는데도 둘이 계속 귓속말 하고 떠드는 거야. 주로 지원언니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말 걸을 때마다 내가 앉아있는 각도에서 보기엔 볼에다가 뽀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깐. 지원언니가 귓속말 할 때마다 두나언니가 얼마나 은은하게 웃던지,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서 환장하는 줄 알았어. 정말 둘이 사귀나? 여대에다가 예술 하는 사람들인데 정말 사귈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 이 생각이 머리에 꽉꽉 차서 내가 악기를 콧구멍으로 불었는지 귓구멍으로 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말한 간접키스 말이야, 악기 같이 부는 것 말고 또 있었어. 합주 하는 내내 둘이 물병 하나로 같이 마시는 거야. 그것도 일주일 내내! 분명히 합주실 뒤에 널리 고 널린 게 물병들이었거든? 근데 왜 둘은 굳이 병 하나로 물을 같이 마셨을까? 그 이유는... 너의 상상에 맞기겠어. 


 

 이것 뿐 만이 아니야. 합주하는데 지원언니는 왜 그렇게 두나언니 허벅지를 만져대? 사실 누가 봐도 간지럼 많이 타는 두나언니를 지원언니가 장난으로 괴롭히고 있겠거니 생각 할 수 있는데, 난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싶지 않아서 자체 필터링 한 점이 있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야. 관악 합주곡이 마성의 알렉스로 들려오고 뭐 그런 거. 너도 잘 알지? 알렉스는 지겹다고? 그럼 선예의 메이비. 사실 보면대 때문에 잘 안 보여야 정상인데 이런 모습들을 놓치면 안 되잖아?  보면대 따위, 내 눈에 투시효과를 달아 주었지. 하여간 지원언니가 쉬는 마디가 되면 자꾸 두나언니 허벅지 만지고 두나언니는 악기 불다가 지원언니가 허벅지 만지면 간지러운지 웃느라 악기를 못 불더라고. 그럴 때면 두나언니가 지원언니 손을 움켜쥐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는데 지원언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기만 했어. 



 거꾸로 지원언니가 악기를 불고 있고 두나언니가 쉬는 마디일 때, 복수라고 하듯이 똑같이 두나언니가 지원언니 허벅지를 살살 쓸어 만졌는데 지원언니는 간지럼을 안타는지 꿈쩍도 안하고 계속 악기를 부는 거야. 어느 정도 하고 포기 할 줄 알았는데 두나언니도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인지 이번엔 옆구리 선을 손끝으로 쓸어 만지기 시작하더라고. 보통 간지럼 태우는 거면 손가락을 막 문어처럼 이래이래, 막 이렇게 무작위로 하지 않나? 꼭 그렇게 눈을 내리 깔고 맨살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쓸어 내려야 해? 어? 그래야 하냐고! 그래서 싫었냐고? 좋아 죽었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넌. 어쨌든, 그렇게 해도 지원언니는 꿈쩍도 안 하더라. 그렇게까지 나오면 간지럽지 않아도 그만 하라고 할 법도 한데 말이지. 그.런.데! 이번에도 반응이 없으니까 이번엔 두나언니 손이 지원언니의 귓불 아래 턱 선으로 향하는 거 있지! 그 때 두나언니가 살짝 미소 짓고 있었는데 웃고 있는 입술 사이로  말캉말캉한, 그 분홍빛 혀를 살짝 내밀어 아랫입술을 핥고 있는데, 그게 진짜 이~뻐~ 으와우!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미안 나 지금 뭐라고 짓껄였니. 하여간, 검지손가락을 턱 선에 대고 천천히 훑고 내려오는데 보고 있는 내가 더... 내가 다... 아 몰라 죽겠다. 나 변태 아니다, 너도 니 눈으로 봤으면 지금 내가 이해가 갈 거야.



 근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노골적으로 스킨쉽을 할 수 있지? 뭐? 딴 소리 하지 말고 그 다음 지원언니가 무슨 반응을 보였냐고?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다 이야기 할 거니까 걱정 마. 나야 말로 지금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거리거든? 사실 별 거 없었어. 지원언니가 악기 불면서 두나언니를 째려 봤거든? 악보에서 눈 떼고 불다 보니까 좀 심하게 삑사리가 나 버려서 교수님이 지휘하시다가 째려보셨어. 지원언니가 얼마나 민망해 하던지, 두나언니는 고갤 숙이고 웃고 있는지 몸이 조금씩 들썩이더라. 그러고 합주 끝나고 결국 두나언니 4학년 언니들한테 혼났잖아. 합주시간에 떠든다는 둥, 선배 틀린 게 그렇게 재밌어서 웃냐는 둥. 근데 이 와중에 지원언니는 두나언니 편드는 거 있지?


  

"배두나, 너 오늘 왜 그렇게 떠들어? 합주시간이 너 잡담 시간이야?"

"그리고 너 장난 좀 작작 쳐. 지원이가 니 친구냐?"

"야 그만해, 얘 휴학생인데 여기 온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우리한테 욕도 먹어야겠어?"

"니가 그렇게 오냐오냐 해주니까 얘가 더 기어오르는 거잖아."

"기어올라? 어딜?"

"... 나 지금 너랑 말장난 하는 거 아니거든?"

"솔직히 얘가 기어오른 적이 어디 있어? 얜 그래도 개념 있고 후배로서 니네 후배들 보다 잘 해. 그리고 만약 혼낸다 해도 내가 혼내."


 

 와 진짜. 부럽기도 하고 둘 관계가 의심되기도 하고. 그 광경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혼자 얼마나 꽁기꽁기 했는지. 그러고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두나언니는 오히려 자기편 들어줬다고 지원언니한테 투정부리는 거 있지? 언니 맨날 나 때문에 동기들이랑 싸우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야. 진심 후배사랑 선배사랑 쩌러. 나는 왜 색소폰을 안 했나, 엄청 후회했다니까.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오늘 약속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다. 뭐? 마저 말해내라고? 음.. 어차피 또 기억나는 것도 없어. 다음번에 만날 때 더 이야기 해줄게. 오키?


 

3




 어휴 그놈의 술. 내가 진짜 술 때문에 황천길 구경하고 온 사람이야. 응? 카라멜 마끼아또 사주겠다고? 흠... 나 살 쪄서 그런 거 이제 끊을 려고 했거든, 그니까 술, 마끼아또 말고 고기 사줘. 히히 농담이야. 뭐? 진짜 사준다고? 아 정말 살 쪄서 안 되는데. 몰라 일단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아 지금 말고 나중에 사준다고? 딴 말 하기 없기다? 약속. 자 그럼 일단 오늘은 좀 대박 에피소드 이야기 해 줄게. 사실 내가 이 일 때문에 완전 이 두 언니들한테 꽂혔던 거였는데 대체 왜 이 일을 잊고 있었는지 몰라.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나. 그래, 두나언니가 방에 찾아왔을 때. 내가 캠프 때 색소폰 하는 1학년 애랑 같은 방을 썼었어. 근데 하루는 자려고 이불까지 다 덮고 한 명이 불을 끄려 일어나 있던 상태였단 말이야. 불 끄려고 하는데 누가 막 현관을 두드리더라? 그래서 일어나 있는 애가 방문을 열어줬어. 열자마자 애가 당황해서는 황급히 인사하는 뒷모습이 보여서 누워있던 나머지 애들도 벌떡 일어났어. 그 땐 이미 집합도 몇 번해서 우리가 군기 단단히 잡혀있던 시기였거든. 그리고 방에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두나언니였어. 맨날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지원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에 우리한텐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선배가 우리 방에 들이닥쳐서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면서도 얼굴 한 번 더 봐서 좋기도 했어. 두나언니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린 90도 배꼽인사를 시작했지. 근데 언니는 인사 받아주는 과정은 상큼이 뛰어넘기고 다짜고짜 1학년 색소폰 하는 애를 불렀어.


  


"벌써 자려고? 지원언니 방으로 와."

"네?"

"지원언니가 마피아 하고 싶데. 너도 같이 하자고."

"아.... 네 갈게요."

"응, 너도 올래?"


 

 둘이 대화를 마치고 먼저 나가려고 등 돌렸던 두나언니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갑작스레 뒤돌아선 나보고도 올 거냐고 묻는 거 있지? 맨날 멀리서 바라만 보던 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말까지 붙이고, 연예인이 어장관리를 위해 덕후들에게 말 걸어 준 그런 느낌? 그래서 난 어쨌냐고? 대답도 못하고 얼어서 물고기 마냥 입만 벙긋벙긋 거렸지. 그런 날 보고 웃으면서 너도 와. 사람 많을수록 재밌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가는데 진짜 황송해 미쳐버리겠더라. 마음은 벌써 두 사람 방에 가 있는데 1학년 색소폰 하는 애는 선배들 방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내가 안 갈 까봐 내 팔 붙들고 같이 가 달라고 조르는 거야. 나는 속으론 100미터 7초에 들어갈 스피드로 뛰어갔지만 겉으론 부탁을 거절 못해 마지못해 끌려가는 사람처럼 질질질 발을 끌며 색소폰 애 손에 이끌려 방으로 향했어.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는데 신발들이 어찌나 많던지, 가장 자리엔 다 마신 소주병과 맥주 캔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고 방 불도 모호한 갈색 불빛을 내고 있었어. 바닥엔 이불이 깔려 있었고 방에 딱 맞게 선배들이 둥글게 앉아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가 끼어 앉자 조금 좁아졌지만 아늑하니 좋았어. 겨울이라 앉아서 무릎까지, 혹은 어깨까지 올려 이불을 덮고 있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하나가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근데 이불 다 깔고 그 위에 라면이니 편의점 떡볶이니 과자니 맥주니 잔뜩 올려져있어서 쏟을까봐 조마조마해 보이기도 했고. 근데 이런 거 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조금은 취해 보이는 지원언니가 두나언니 어깨에 기대 있는  모습이었어.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많이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방 불빛 때문인지 몰라도 지원언니 얼굴이 분홍빛 홍조를 띄고 있었어.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나 저거 아- 하면 자동적으로 두나언니가 안주를 집어 입에 넣어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취한 여친 간수하는 남친st라서 훈내가 터지더라. 그리고 마피아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지원언니가 두나언니를 죽이겠다는 거야. 


 

"내가 얘랑 마피아 많이 해서 아는데 얘 완전 사기꾼이야. 얜 무조건 죽이고 시작해야 돼."

"나 시민이거든요? 지금 언니가 나 죽이려는 거 보니까 마피아네!"

"너 이러면서 은근히 선량한 시민 죽이려는 속셈이지? 배두나 확실해 죽여 죽여!"

"잠깐, 나 죽으면 마피아 누가 잡을 건데요? 명탐정 두나가 필요 할 텐데?"

"됐어 필요 없어 죽여 죽여!"


 

 지원언니가 술주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엄청난 기세로 죽이려 드니까 다들 동의하는 눈치였어. 그리고 두나언니는 최후의 변론 때 나와 지원언니를 포함해 4명을 마피아 용의자로 지목하고 첫 번째로 죽었어. 근데 신기한 점은 두나언니가 지목한 용의자 중에 나와 지원언니를 포함해 3명이 진짜 마피아였다는 거야. 두나언니가 죽기 전에 난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내가 마피아인 걸 알았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야. 하지만 아무도 두나언니 말을 안 듣고 우릴 안 죽여서 마피아가 승리했지롱. 그 뒤로도 3판 더 했는데 지원언니 말대로 두나언니는 완전 사기꾼 이야. 2판 연속 마피아를 했는데 다들 완전 감쪽같이 속았다니까. 그리고 마지막 판은 두나언니가 직접 사회를 봤는데 이 언니는 사회를 보는 건지 지원언니랑 연애를 하는 건지 정말... 사회를 어떻게 보길 래 연애하는 것 같았냐고? 사회자가 사람들 가운데로 들어가서 눕는 거야.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지원언니 무릎을 베고서! 그러고선 한다는 말이 마피아 미션으로 자기한테 윙크를 하라고 하는 거야. 근데 윙크를 하라고 했으면 모든 사람들을 눈을 맞춰봐야 할 텐데 지원언니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 있지?


 

"왜 쳐다봐."

"윙크하라고요."

"웃겨, 나 마피아 아니거든?"

"설마, 내가 언니 뽑았는데 시치미 뗄래요?"

"뭐? 나 진짜 마피아 아니거든?"


 

 그렇게 말해도 계속 두나언니가 지원언니 얼굴만 빤히 보는 거 있지? 그것 외에도 마피아 들은 볼을 만지세요, 이렇게. 하면서 지원언니 볼 쓰다듬고 계속 언니 무릎 베고 누워있고. 거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어쩜 그렇게 둘 만의 시간을 오붓하게 잘 보내고 있던지 보는 내내 므흣 했었다고. 아, 그래서 지원언니가 마피아가 맞았냐고? 아니 선량한 시민이더라. 두나언니는 사회자를 보면서도 사기 치는 엄청난 스킬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


  

 응? 이게 좀 대박 에피소드냐고? 이정도면 꽤 쌔지 않아? 아 잠시만, 미안미안 이 멱살 좀 놔줄래? 사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마피아는 그냥 밑거름. 본론으로 들어갈게. 야야 너 너무 좋아한다. 우리학교 오고 싶다고? 와라 와. 근데 와봤자 멀리서 구경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나도 언니들이랑 하나도 안 친하거든. 분명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개강하고 많이 안 보니까 다시 멀기만 한 연예인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지 뭐야. 아,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고? 그럼 와. 금요일 관악합주 시간에 맞춰 오면 두 언니가 꽁냥거리는 걸 니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을 거야. 잠깐 우리 이야기가 너무 삼천포로 샜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갈게. 마피아가 끝나니까 꽤나 늦은 시간이었어. 그리고 우리 다들 술을 좀 마셔서 알딸딸한, 조금 기분이 업 되어 있는 상태가 되었지. 피곤한 사람들은 돌아가서 자도 좋다 해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누군가 뜬금없이 진실게임을 하자는 거 있지. 그 말에 두나언니가 저 할래요! 신나서 대답했고 지원언니도 고갤 끄덕이며 하겠단 의사를 표시했어. 그리고 바닥에서 조금 떨어졌던 내 엉덩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다시 붙었지. 그렇게 해서 나까지 포함해 5명이 남아서 진실게임을 시작했어. 사실 안 그래도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인데, 알잖아 나 휘발성 기억력인 거. 술기운까지 올라 있어서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가장 기억에 남던 것들을 이야기 해줄게. 일단 남친이 있냐는 질문에 지원언니랑 두나언니 모두 없다고 대답했어. 근데 웃긴 건, 둘이 없다고 대답하면서 웃는 거야,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우린 남친이 없는 거죠?"

"그래 우린 확실히 남친이 있진 않지."

"역시 그렇죠?"

"역시 그렇네."


  

 이거였어. 이것은! 남친이 아니라 여친이 있단 소리 아니야? 난 그렇게 들렸어. 두나언니가 남친이란 단어에 특히 악센트를 넣어 표현했거든. 그 말은 즉 슨, 우리 둘은 사귀지만 우린 여친들 이니까 여기엔 포함 안 됨. 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어. 너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지 않니? 내말에 100% 공감 된다고? 진짜 내가 이런 말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너 밖에 없다 자기. 그리고 이거 말고 또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질문 한 거였는데 여자한테 고백 받아 본적 있냐는 질문에 둘 다 있다고 하는 거야. 지원언니는 중학생 때 여중을 나와서 받아봤다고 그랬고 두나언니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불과 2달 전인 작년까지 총 4번 정도 받아봤다고 하는 거 있지? 그 말을 듣고 가장 놀랜 사람은 지원언니였어. 알고 보니까 지원언니랑 두나언니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더라고. 근데 여자한테 고백 받는 걸 자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야. 그 말에 그 여자애가 안 좋게 소문 돌까봐 될 수 있으면 비밀로 넘어가 주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갑자기 두나언니가 실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지원언니한테 고백 받은 거 까지 합치면 5번이네. 하고 꺄르르 웃는데 거기 있는 일동들 다 얼음이 되었어. 너무 놀라서 정말요?를 얼마나 크게 외쳤는지, 지원언니는 인상을 쓰고 아니라고 해명하기 바빴고.


  

"야! 내가 언제 너한테 고백했어!"

"농담이고, 고백은 아니지만 고백 비스무리한 것을 했죠."

"난 그런 거 한 적 없거든?"

"있거든요?"

"없다니까!"

"있다니까요."

"언제?"

"진짜 기억 안 나요?"

"그런 적이 없는데 당연히 기억 안 나지."

"음... 고등학생 때."

"고등학생 때....?"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

"언니도 기억력 참 안 좋다."

"너가 1학년 때는 우리 별로 안 친하지 않았나?"

"1학년 관악 정기연주회 때."

"아...."

"좀 더 정확힌 정기연주회 리허설 때. 언니가 저한테 와서 ....읍"

"그만해라."



 두나언니가 말하고 있는데 지원언니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아버리는 거야. 아니 대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뿐만 아니라 거기 있던 다른 언니들도 지원언니한테 진실게임이니까 말해 달라고 계속 애걸복걸했는데 절대 안 된다고 계속 고갤 젓는 거야. 두나언니한테도 계속 말해달라고 해봤는데 옆에서 지원언니가 눈에 힘주고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더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끝까지 듣지는 못 했지만 확실한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있었다는 거잖아?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어. 진짜 대박이지? 이 언니들 진짜 사랑 할 수밖에 없는 선배들이지 않아? 너 광대가 승천하기 위해 날개 짓 하고 있는 게 느껴져. 오늘 이야긴 좀 맘에 찼어? 어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아.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큰일이네. 나 먼저 갈게. 다음번 만나면 고기 쏘는 거 잊지 마!


 

4




 지겹지도 않냐? 나 또 만나는 거. 우리 요즘 너무 자주 보는 것 같단 생각 안 들어? 아, 선배들 이야긴 아무리 들어도 안 질린다고? 오히려 나를 만나기로 한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정말? 그 정도였어? 그러니까 어서 내가 본 것들을 털어내라고? 거참, 어찌된 게 너가 나보다 언니들한테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우리 우연인 마냥 언니들 만나는 장소에서 만나자고? 음, 언니들이 좋아하는 음식점이나 카페를 조사해 봐야겠네. 아참 그러고 보니 오늘 어떤 카페에 갔을 때 언니 둘이서 사이좋게 빙수와 토스트를 먹으며 대화 나누고 있더라. 거기 토스트 진짜 맛있어. 언제 나랑 가자 그 땐 내가 쏠게. 근데 만약 우리가 갔을 때 언니들 있으면 너가 쏘기. 콜? 개소리 말고 얼른 얘기나 시작하라고? 이놈이 내가 좋은 거야 내 주둥이가 좋은 거야?! 아 미안 대답 하지 마, 대답 들으면 왠지 나 상처 받을 것 같아. 오늘은 내가 널 위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곰곰이 생각해왔어.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진 말고,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안 되니까.


 

 하루는, 오전 합주 때 까지만 해도 둘이 엄청 좋아서 온갖 장난이란 장난은 다 치고 있었으면서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시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후 합주 연습을 하는 내내 둘이 눈도 안 마주치고 대화도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평소 같았으면 쉴 때마다 두나 언니 손을 가지고 놀던 지원언니가 정색하고 교수님만 바라보며 합주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어색하면서도 정색하고 있으니까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그랬어. 두나언니는 지원언니한테 할 말이 있는지 계속 지원언니 옆모습을 바라봤지만 지원언니 고개는 좀처럼 두나언니를 향해 돌아 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어. 두나언니는 계속 크게 한숨을 뱉으며 앉아 있었고. 잠시 쉬는 시간을 받았을 때 지원언니를 불렀지만 지원언니는 두나언니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버렸어. 지원언니가 밖으로 나가서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두나언니는 머리를 마구 엉클며 인상을 찌푸리더라. 그 모습을 보며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둘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정말 단단히 있었구나.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어. 1학년들은 엄청난 중압감에 서로 눈치 보기 바빴었지.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합주가 시작되었을 때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 두나언니는 여전히 아련하게 지원언니 옆모습을 바라보았고 지원언니는 그런 두나언니를 계속 무시하기만 했지. 이와 중에 나는 둘이 걱정이 되기보다 분명 사랑싸움을 했을 것이란 덕후 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어. 지금 너도 내 이야기 들으며 속으로 사랑싸움이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어떻게 알았냐고? 너나 나나 생각하는 방식이 똑같지 뭐. 하여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으로 인해 무겁기만 했던 합주는 끝이 났고 교수님이 자릴 뜨자마자 지원언니도 자릴 일어나 합주 실을 빠져 나가려고 했어. 근데 두나언니가 못 가게 붙잡는 거야. 엄청 빠르게 걸어서 문으로 향하고 있던 지원언니에게 뛰어가 손목을 낚아채 잡으며 돌려 세우는데 이건 무슨 퀴어 드라마 돋아. 잡히자마자 손 뿌리쳐 내려고 하고 지원언니가 손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더 세게 움켜쥐고 놓지 않는 두나언니의 모습이란 참...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찌나 입 근육이 실룩실룩 거리던지. 


 

"이거 놔."

"잠깐 얘기 좀 하자니까요?"

"너랑 할 말 없어, 이거 놔."

"싫은데요?"

"...놓으라고 했다."


 

 계속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놓으란 이야기만 하는 지원언니가 어찌나 무섭던지. 진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쩌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포스였어. 나도 모르게 고갤 숙이고 내 발끝만 바라보게 만들더라. 나 말고 다른 애들도 기가 팍 죽어서 움츠러들어 버렸더라고. 그런 상황에서도 두나언니는 지원언니 손을 놔 줄 생각은커녕 똑바로 눈을 마주보고 같이 정색하고 있는 거 있지? 둘이서 말다툼은 전 학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계속 되었어. 어찌나 살벌하게 싸우던지, 대체 왜 그렇게 싸우게 됐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왜냐면 지원언니 입에서 너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 이런 말까지 튀어나오더라고. 두나언니는 그 말을 듣고선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 치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러더라. 아무리 둘이 친하더라도 4학년 언니들이 다 보는 앞에서 지원언니한테 반말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언니들이 완전 꼭지 돈 거야. 그래서 둘 만의 싸움은 더 크게 번지기 시작했어. 언니들이 단체로 두나언니를 까기 시작한 거야. 그래 차라리 거기까지였으면 괜찮았지, 그냥 두나언니 혼자 까이고 상황이 종결되는 거였으니까. 문제는 두나언니도 완전 흥분해있던 상태라서 선배고 나발이고 막 개기기 시작하는 거야. 지원언니는 상대하기도 싫단 듯이 합주 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야 배두나, 너 말 끝이 좀 짧다?"

"지원이가 니 친구야? 친구냐고."

"우리 일이니까 신경 끄세요."

"이 년이 미쳤나. 너 제 정신이야?"

"아, 좀 비켜요. 하지원!"

"하지원? 야 배두나, 정신 나갔냐? 너넨 뭘 쳐다봐, 고개 안 숙여?"


 

  4학년 언니들이 두나언니 둘러싸고 막 언니한테 훈계하려 하는데도 두나언니는 계속 문 쪽으로 향하는 지원언니만 보면서 이름 막 부르고 그럴수록 4학년 언니들은 더 꼭지 돌고, 지원언니는 계속 두나언니 무시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두니언니가 4학년 언니들 틈에서 벗어나서 지원언니 따라가서 붙잡아 세우고. 아무리 지랄해도 말 들어 먹을 생각 안 하는 두나언니 때문에 4학년 언니들은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 하게 되고 우리는 그저 안절부절 못하고 고개 숙이고 있었어. 진짜 엄청 언성 높아지고 그러니까 너무 무서운 거야. 처음으로 지원언니랑 두나언니가 엄청 원망스러운 순간이었어. 둘 사이에 있는 일은 둘이서 조용이 해결하지 왜 우리 다 있는데서 싸워서 4학년 언니들 화나게 만들고 우리까지 고생하게 만드나,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꽉 채웠지. 


 

"배두나, 그 따위로 밖에 행동 못 해? 지금 너 모습 보고 얘네 들이 무슨 생각 하겠어? 선배가 선배한테 개기는 모습 잘 보고 배우라고 지금 이러는 거야?"

"처음부터 언니가 내 말 무시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너 아직도 말끝이 짧다?"

"언젠 말 놓으라며."

"누가 이 따위 상황에 놓으래?"


 

 진짜 두나언니로 인해 엄청 상황이 악화되고 얼떨결에 우린 그 자리에서 집합을 받게 되었어. 지원언니는 완전 제대로 빡 쳐서 합주 실을 나갔고 두나언니는 붙잡혀서 엄청 욕을 먹었지. 그 전에도 몇 번 집합을 받긴 했지만 이 날은 진짜 너무 살벌했어. 엎드려뻗쳐도 시키고 그래서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솔직히 우린 딱히 잘 못 한 것도 없는데 혼나기 시작한 거잖아. 속으로 너무 무섭고 또 억울해서 눈물 나올 것 같았는데 정말 입술을 꽉 물어가며 참았어. 근데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가 힘들어서 어떤 애 한명이 넘어진 거야. 근데 걔가 조금씩 훌쩍이며 울기 시작하더라고.


 

"야, 너 울어? 고개 들어봐. 너 우냐고."


 

 그 말을 듣더니 애가 이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어. 소린 안 내고 그냥 울음 삼키려고 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야. 그 애가 트럼본 하는 애였는데 그 모습을 본 트럼본 4학년 언니가 그 앨 데리고 합주 실 밖으로 나가버렸어. 근데 그 모습을 보고 너도 나도 참고 있던 울음을 막 터트리기 시작하는 거야. 나도 서러워서 막 눈물이 흐르더라. 그러니까 나랑 같은 전공인 언니가 휴지 들고 다가와서 눈물을 닦아주며 다독여 주기 시작했어. 근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다른 애들도 4학년 언니들이 와서 눈물 닦아주며 위로해 주고 있는데 그 사이로 정말 너무 서럽게 울고 있는 1학년 색소폰 하는 애를 안아주며 웃고 있는 두나언니가  보이는 거 있지? 합주실로 황급히 들어 온 지원언니 역시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색소폰 1학년 애한테 가서 달래주는데 그때 깨닫고 물어봤지.


 


  언니 이거 몰카에요?


 

 눈물범벅이 되어선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 상태로 힘겹게 물어보니까 날 감싸주고 있던 4학년 언니는 씨익 웃으며 고갤 끄덕이는 거 있지? 그땐 진짜 선배고 나발이고 한 대 치고 싶었어. 다른 언니들도 큰소리로 서프라이즈! 얘들아 몰래 카메라야! 하고 외치는데 진짜 다들 울면서 더 우는 거 있지? 색소폰 하는 애는 두나언니 팔뚝을 때리며 언니 밉다고만 하고 두나언니는 웃으며 지원언니랑 하이파이브를 하더라. 아까 그렇게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우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두나언니는 지원언니 어깨에, 지원언니는 두나언니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데 정말 얄미우면서도 그 포텐 폭발하는 훈훈함에 눈을 뗄 수가 없더라. 난 참, 양반이 될 수 없는 사람인가 봐. 그래도 두 사람 연기력은 정말 대박이란 생각은 떨 칠 수가 없었어. 마피아를 하면서 두나언니가 사람 속이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두나언니의 연기력은 이해가 갔었는데 지원언니는 무슨 배우인 줄. 이제부터 지원언니 별명은 하배우다. 그럼 두나언니는 배사기꾼? 큭큭 언니들한텐 내가 이런 별명 붙인 거 비밀이다. 물론 너가 언니들을 만날 일은 없겠지만. 하여간 둘이 웃으면서 방금 전까지 몰카를 회상하며 떠드는데 진짜...


 

"언니 진짜 나 꼴도 보기 싫어요? 나 솔직히 그 말 들었을 때 순간 상처 받았잖아요."

"그 때 잠깐 진심이 튀어 나왔지."

"뭐요? 진짜 나 없으면 보고 싶다고 떼 쓸 거면서."

"안 그럴 거거든?"

"그럼 캠프 끝나면 나한테 연락하지 마요. 아니 오늘부터 나한테 말 걸지 말아요. 나 오늘은 내 방에서 잘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안 돼. 내 방 와서 자."

"싫은데요?"

"알았어, 너 보기 싫단 말은 뻥이야 됐지?"

"풉- 진작 그렇게 말하지."


 

 대화를 엿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생겼었어. 캠프기간 내내 지원언니랑 두나언니는 같이 잤다는 거야. 헐 대박. 진짜 울음도 멈추고 멍하니 두 사람 대화를 엿 들었어. 둘은 정말 같이 잠만 잤을까? 같은 해선 안 되는 망상의 나래를 펼쳤다고는 내 입으로 말 못해. 계속 되는 두 사람 대화에 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지.


  

"아까 내 입으로 누가 이런 상황에 말 놓으래? 라고 말했을 때 순간 웃을 뻔했잖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까 방에서 분명 이럴 때 반말 쓰는 거지! 하고 떠들던 사람이 그런 대사를 뻔뻔하게 치다니. 진짜 웃음 참느라 혼났다니까요."

"전 그런 것도 모르고 언니들 정말 싸우신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미안미안, 그래도 재밌지 않았어?"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큭큭 우린 재밌었어. 그치 두나야?"

"네에- 지원언니이- 언니 이참에 저 언니한테 말 놓을까요? 아까 말 놓으니까 훨씬 편하긴 하던데."

"이게 또 나 맘먹으려고 하지!"

"왜에- 사실 언니도 좋잖아-"

"너 진짜..!"


 

두나언니가 중간 중간 존댓말과 반말을 섞으면서 이야기 하는데 반말 쓸 때마다 지원언니가 귀신같이 눈치 채고 쓰지 말라고 하는데 얼굴은 말과 다르게 웃고 있는 것이 사실 좋지 않냐는 두나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았어. 


 


5




 지난번엔 내가 말 하다 말고 사라졌지? 미안미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지 뭐야. 내가 절대 너랑 밀당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이 몸이 좀 바쁠 뿐이야. 이해 해 줄 거지? 그니까 그렇게 때릴 기세로 보지 말아줘. 뭐? 야 넌 여태 친구 전공도 몰랐냐, 실망이야. 내가 말을 안 해줬다고? 음,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난 클라야 클라리넷. 리코더는 어떻게 합주 안 껴 주냐고? 합주엔 없고, 니가 열심히 해서 협연 하는 건 어때? 그럼 모두의 주목도 받고 두 언니들의 이목을 끌 수도 있을 거야. 그럼 열심히 해서 협연 오디션 봐봐. 참고로 난 리코더가 협연하는 건 한 번도 못 봤어. 아, 지난 번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 냐고? 갑자기 어딜 가긴 했지만 내 기억엔 그래도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그냥 오늘은 다른 이야기 해 줄게. 캠프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인데, 그 날 처음으로 악보계가 새로운 악보를 나눠주더라고. 근데 제목을 보니 내가 아는 곡이었는데 좀 의아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해서 고갤 갸웃거리면서 들어 지원언니를 바라봤어. 왜냐고? 그 곡은 70%가 색소폰 솔로인데다가 정통 클래식이 아닌 재즈 요소가 섞여있는 곡이었거든. 색소폰 빅 솔로라 지원언니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지원언니는 클래식 전공인데 재즈 느낌을 잘 소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바라 본 거였는데 지원언니는 자기 보면대에 악보계가 악보를 놓고 간 사실도 모르는지 그저 두나언니와 떠들기 바빠 보였어. 그래서 조금 걱정 되었지. 이번 캠프를 통해 알아낸 작은 사실 중 하나가 분명 교수님 성격상 개인 연습 할 시간도 안 주고 바로 이 곡 합주 연습에 들어가실 분이란 것도 포함 되어 있었거든. 그리고 내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어. 교수님은 들어 오시자마자 바로 지금 받은 악보 펴세요. 하고 말씀하셨거든.

  


 지원언니와 두나언니 둘 다 멀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악보를 보며 교수님이 드는 지휘봉을 바라봤어. 그리고 곡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언니 솔로가 시작되었지. 초견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정 박자가 딱딱 맞았어. 그 사이에 글리산도나 밴딩같은 애드립을 가미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매력 있는 솔로 연주를 하는 지원언니 음악을 들으며 역시 4학년은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하며 내가 쉬는 마디 일 때 고갤 들어 두 사람을 확인했어. 그런데 듣기에 참 평온한 지원언니 소리완 상반되게 당황한 기색이 가득 드러나는 표정으로 악보에 거의 빨려 들어갈 사람처럼 코를 박고 연주하고 있는 거야. 교수님이 지원언니를 보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메시지는 지원언니에게 까지 전달되지 않는 듯 했어. 그리고 그 옆에 두나언니는 계속 쉬는지 지원언니 악보를 옆에서 같이 보며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어. 음, 정말 미묘해서 무어라 말로 표현을 못 하겠네. 계속 다른 생각을 하는지 그 미묘한 표정들이 미묘하게 수시로 변한다고 해야 할까나? 지원언니와 마찬가지로 당황한 표정도 있고, 그 와중에 왠지 즐겁다는 듯한 표정도 들어있는 것 같았고, 쩔쩔매고 있는 지원언니를 조금 귀엽게 여기는 듯 한 표정도 들어있는 것 같았고, 악보를 보며 뭐 이딴 악보가 다 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조금 요란한 박자로 그려져 있는 부분이 나올 땐 오그라드는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하며 얼굴 근육을 억제시키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 진 듯 해.

  

 

 솔로가 끝나 갈 때 즈음, 교수님은 지휘를 관두며 음악을 끊었고 지원언니는 솔로를 멈추고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옆에 두나언니를 돌아보았어. 두나언니를 보는 지원언니 눈빛은 마치 날 이곳에서 꺼내 줘. 하고 구원을 바라는 눈빛이었는데 잔망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구나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지. 두나언니는 그 얼굴을 보며 애써 웃음을 참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는 건 함정이지만. 두 사람의 영원히 지속 될 것만 같았던 눈 빛 교환은 교수님이 지원언니를 부름에 끊어졌고 이런 저런 교수님 말씀이 이어졌어. 주로 지원언니를 향해 한 말들이었지만 지원언니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하염없이 넋을 놓고 기계 마냥 고갤 끄덕였어. 아마 나를 포함해 합주를 하는 학생들은 모두 지원언니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다시 합주가 시작되고 지원언니는 솔로를 나왔어. 이번에도 얼굴에 근심 가득, 당황한 기색 가득 담고 연주하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듣기만 했을 땐 별로 문제는 없게 들렸어. 확실히 프로는 프로더라. 근데 옆에 앉은 두나언니는 고갤 숙이고 몸을 들썩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익숙했어. 저번에 지원언니가 틀렸을 때 두나언니가 웃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 딱 그 모습을 하고 있더라고. 한 손으론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론 지원언니의 무릎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 움켜쥔 손의 힘 강도가 조금 올라갈 때마다 지원언니가 눈을 깔아 무릎에 얹어진 손을 내려 보거나 두나언니를 째려봤어. 다시 지휘가 멈추고 연주가 끊기기 무섭게 지원언니는 두나언니의 팔을 가격하는 것으로 여태 웃은 것에 대한 응징을 하는데, 난 왜 그렇게 두나언니 때리는 지원언니가 좋은지. 맞고 있는 두나언니 입 모양을 보아하니 오그라들어서 참을 수가 없다 뭐 그런 이야길 하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합주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언니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먹게 된 거야. 보통 학년끼리 앉아서 먹는데 둘은 다른 학년인데 붙어 앉아 먹으려하니 아무래도 따로 동떨어져서 자릴 잡았나봐. 근데 내가 늦게 밥 먹으러 와서 자리가 없는 바람에 언니들이랑 합석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언니들 대화에 은근 슬쩍 끼기도 했고.


 

"나 진짜 솔로 죽을 것 같아."

"에이, 시간이 지나면 잘 하겠죠. 지금도 잘 하고 있고요."

"내가 그렇게 잘하고 있어서 넌 그렇게 쳐 웃고 있어?"

"언니가 재즈 부니까 오그라들잖아요."

"나 혼자 오그라드는 걸로 족하거든? 아, 그거 시디 없나? 애드립 듣고 따면 편한데."

"저... 집에 시디 있는데.."

"진짜?"

"네, 아빠가 재즈 색소폰 좋아하셔서..."

"그럼 집 가면 나 메일로 보내 줘."

"나도 나도, 나도 메일로 보내 줘."

  


  음악인도 아니면서 평소 색소폰 음반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아빠가 이렇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 올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니까? 아빠 사랑해. 이럴 때만 사랑하는 거 아닌 거 알지? 하여간, 날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바라보는 지원언니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감격의 순간이었다고 하면 나 좀 변태 같으니? 덩달아 같이 신나서 옆에서 자기도 음악 보내달라는 두나언니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까지 날 향했을 땐 진심 집에 있는 모든 음원을 보내 주고 싶었다고. 너가 내 맘을 알아? 알겠지, 지금 너 표정을 보니 아주 잘 알 듯 하오. 그러면서 옆에 올려 져 있는 내 폰을 집어든 두나언니가 메모장을 켜고 메일을 적어주는 거야. 옆에서 내 메일도 적어 줘. 말하는 지원언니에게 당연하죠. 대답하는데, 보통 아무리 친해도 메일 주소를 외우고 다니진 않잖아? 근데 적어달라고 말하면서 지원언니는 자신의 메일을 두나언니에게 불러주지 않았어. 헐? 분명 보통 사이는 아닐게야. 그럴게야. 이 생각이 드니까 바로 앞에 언니들 있는데도 표정관리가 안 돼서 죽겠는 거야. 그래서 그냥 먹는 것에나 집중하자 그럼 좀 괜찮아 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먹었어. 음, 말 하고 보니까 내가 뭔가 이상한 사람 같네. 아, 나 이상한 사람 맞구나. 밥을 세 숟가락 정도 먹었을 때 두나언니는 메일을 다 적었는지 내 폰을 나에게 돌려주었어. 난 별 생각 없이 두 사람 메일을 확인 했는데 메일을 보는 순간 두나언니가 어떻게 지원언니 메일을 외우고 있는지 바로 이해 할 수 있었어.

  


"이거, 언니들 핸드폰 번호에요?"

"응. 나는 원래 핸드폰 번호가 내 메일이었는데 언니가 보고 따라 했어."

  


 아...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더군. 커플폰 커플모자 커플티 커플신발 등등 여러 가지 커플로 맞추는 것을 봐 왔지만 메일을 커플로 맞출 생각을 하다니. 사람들한테 그다지 보여 지는 것도 아니고 만약 이렇게 누군가 두 사람 메일을 알게 되었을 때 커플로 맞췄다고 의심 받을 일도 적게 메일을 커플로 맞추다니! 진짜 고단수도 이런 고단수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 하고 있었는데 두나언니가 한마디 더 얹어 놓는 바람에 난 정신 줄 놨었잖아.

  


"이거 내 생년월일, 지원언니도 생년월일이야. 뒤에 두 숫자는 난 반복, 언니는 뒤집어서. 뿐만 아니라 나랑 같은 폰으로 바꿨잖아. 지원언니는 완전 나 따라쟁이 라니까."

"밥이나 먹어 두나야?"

  


 친절히 숟가락을 들어 두나 언니 입에 밥을 쑤셔 넣어주는 지원언니를 보며 두 사람의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 내 착각일까? 두나언니는 조금은 알아 달라는 듯이 우리 사겨요. 이 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지원언니는 끝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두 사람이 정말 사귀고 있던 안 사귀고 있던 지원언니는 내가 두 사람 관계에 대해 몰랐으면 하는 느낌을 받은 건 엄연히 사실이라서 더 이상 이 것 저 것 물어 볼 수가 없었어. 단지 두 사람 메일 주소를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뿐이었지.

  


 

하지원 [email protected]

배두나 [email protected]

  


 

 그럼 지원언니 생일은 6월 28일이고 두나언니는 10월11일인 거구나. 이때까지 언니들이랑 좀 친해져서 생일 파티 같이 하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벌써 6월이네. 28일 이면 종강 한 다음일 테니 지원언니 생일 땐 아마 언니 얼굴도 못 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엄청 서운한 거 있지? 근데 사실 내가 이렇게 언니들 이야기 하고 다니는 것도 언니들은 모를 텐데 말이야. 나는 못 봐도 두나언니는 만나겠지? 둘이 만나서 뭐할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야. 어떻게 알 방법이 없을까? 언니들 집이라도 알면 내가 집 앞에서 대기 타다가 미행이라도 할 텐데, 사실 말도 안 되는 시슈웨이션이지만. 근데 무슨 말을 하다가 내가 지금 이런 소릴 하고 있는 거지? 아 메일. 나 진짜 말 하면서 삼천포로 빠지는 거 최곤 듯. 하여간 메일주소 받고 언니들은 금방 밥 다 먹고 먼저 자릴 일어섰어. 

  


 그리고 오후엔 합주 연습 없고 캠프 마지막 밤이라고 바비큐파티가 열렸지. 말이 바비큐파티지, 실제론 그냥 고기 구워먹고 1학년들은 또 장기자랑 하고 그런 시간을 가졌지. 처음엔 학년끼리 앉아야 해서 그런지 둘이 따로 앉아 있었는데 슬슬 술도 들어가고 장기자랑이 시작 되면서 둘이 나란히 붙어 앉아서 핸드폰을 들고 우리 장기자랑 하는 모습을 찍으며 즐거워했어. 아마 내가 풍선을 옷 속에 넣고 흔들어주세요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춘 동영상을 그 두 사람은 아직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장기자랑이 끝나고 쉬기 위해 방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식당을 나가는 문 바로 옆에 맥주와 소주들이 박스채로 진열되어 있는 거야. 그 옆엔 색소폰 2학년 언니와 나란히 서서 소주 한 짝을 들고 있는 내 동기인 색소폰 하는 아이가 보였어. 그 바로 옆에 있었다는 2학년 언니는 맥주 한 짝을 들고 있었고. 


 

"방에 안 가?"

"색소폰 파트모임 한데. 이거 우리 넷이 다 마실 건가봐."

"아.. 그럼 나 먼저 올라갈게."

"응, 잘 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술을 보며 질겁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색소폰 애를 지나쳐 방으로 돌아갔어. 술 마실 생각에 그 아인 한숨만 뱉으며 서있었지만 난 그게 또 어찌나 부럽던지. 방에 돌아가서 우리 방 아이들한테 색소폰은 파트모임한데. 이 말을 건넸더니 애들도 다 같이 부러워했었는데, 하여간 복 받은 애들은 지가 복 터진 것도 몰라. 어찌되었든 난 씻고 잘 준비 다하고 누워서 심드렁하게 티비나 보고 있는 사이 그 색소폰 하는 애한테 전화가 왔어. 


 

"여보세요?"

-뭐 해애애애?

"그냥 티비봐."

-지워니언니 방으루 올래? 언니가 칭구 불러두 된데, 와라아아아앙

"... 알았어 갈게."


 

 술을 대체 얼마나 마셨는지는 몰라도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져선 말끝을 길게 늘리며 말하는 친구 걱정 반, 언니들 얼굴 볼 수 있단 기대감 반 끌어안고 지원언니 방으로 향했어. 방문을 여니 지난번에 왔을 때처럼 맥주병과 소주병이 신발장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어. 방 불빛 역시 탁상용 스탠드에만 불이 들어와 있어 어두웠지만 참 분위기는 좋은 방이란 생각이 들었어.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은 티비는 케이블 방송을 틀어 나왔는지 언제 적인지 모를 꽤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예능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소리를 아주 작게 틀어놔서 방안이 시끄럽진 않았어. 대신 조용하지도 않았지. 내 친구는 방 한가운데에 뻗어 누워서 소리도 잘 안 들리는 티비를 시청하다가 날 보고 빙구처럼 웃으며 왔어? 하고 날 반겨주었는데 얘가 정말 맛이 제대로 갔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더라. 얼굴이 붉게 물들다 못해 터질 것 같았거든. 지원 언니랑 2학년 언니는 비교적 멀쩡해 보였어. 두나언니는 어땠냐고? 사실 내가 도착했을 때 두나언니는 지원 언니 옆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는데, 상황은 분명 술이 떡이 되어서 잠들었다고 가정해야 옳은 것일 텐데 얼굴이 굉장히 평온한 것이 잘 시간 되어서 곤히 잠든 5살 유치원생 같다고 해야 할까?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두나야."

"..."

"두나야, 자?"

"...으으...응..."

"정말 자? 너 자면 나 심심하단 말이야. 일어나."

"..."


 

 무슨 말인지 알고는 대답하는지, 잠꼬대로 목 안에서 희미하게 울리는 소릴 내며 대답하는 두나언니를 지원언니는 어깰 잡고 흔들어 깨우려 하고 있었어. 지원언니가 흔들면 흔들수록 두나언니는 더 몸을 웅크리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하니까 지원언니가 조금 인상을 쓰고 두나언니 볼을 꼬집었는데 그래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두나언니 덕분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지. 그게 엄청 귀여워 보였거든. 지원언니 홀로 두나언니를 깨우기 위한 실랑이는 2학년 언니가 말림으로 끝을 맺어졌어.

 


"언니, 두나가 여기 오기 전부터 많이 피곤해 했잖아요. 그냥 자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캠프 마지막 날인데..."

"지금 깨워서 더 마시면 내일 얘 집에 못 가요."

"... 하긴, 피곤 할 만도 해."

"그렇죠?"

"응, 여기 와서 매일 나 때문에 4시쯤 잤거든. 난 4학년이라 너네 집합 할 때 방에 와서 자곤 했는데 얜 그것도 아니잖아, 평소에 잠도 많은 앤데."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이불을 집어 들고 두나언니한테 덮어주는 지원언니를 보며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해야 옳은 거야? 매일 밤마다 뭐하느라 4시까지 안 잔거래? 응? 나 좀 가르쳐 주면 안 되나요 지원언니? 진실게임 딱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나 질문할 것이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진짜 나 혼자 두근두근 거려서 심장 마비 걸릴 것만 같았잖아. 응? 근데 왜 2학년이 두나언니한테 반말 하냐고? 나도 처음 대화 하는거 들었을 땐 좀 으잉? 이런 생각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2학년 언니가 재수생이더라고. 두나언니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그래서 반말 하는 사이라는 걸 입학하고 알았어, 어쨌든.


 

 그 이후에도 우리끼리 술도 좀 더 마시고, 참고로 내 친구는 더 이상 안 마셨어.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지원언니의 관심은 온통 자고 있는 두나언니한테 쏠려 있는 것이 한눈에도 딱 알겠는 거야. 조금만 뒤척여도 이불 다시 잘 여미어 주고, 멍하니 있을 땐 항상 두나언니 얼굴을 바라보고 앉아있고. 그리고 대체 왜 그렇게 자고 있는 사람 머리를 만져대는 거야! 그냥 생각나면 한 번씩 머릴 쓰다듬어주는데 그게 어찌나 보기 좋던지. 하나님아버지 저에게 이런 선배와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게 제공해준 친구를 두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아멘.  기도가 절로 나와 진짜. 다른 사람들 관심이 자신에게 너무 쏠려 있다 싶으면 만지는 걸 잠시 멈추었다가 티비를 보거나 무슨 대화를 하느라 지원언니에 대한 관심이 조금 소홀해질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두나언니한테 손이 가는데, 가끔 도톰한 두나언니의 아랫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웃더라고. 대체 그 웃음은 무엇을 상상하며 짓는 웃음이길 래 그렇게 아름다울까 싶더라고. 하... 정말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해... 아마 평생 안 잊혀 질 것 같아.


  

 그렇게 캠프 마지막 밤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왔어. 이걸로 내가 캠프에서 보았던 언니들에 관한 이야기는 끝! 난 또 알바가 있어서, 빠이.


 

 아 깜짝아. 나 가야하는데, 할 말 있어? 뭐? 날 좋아해? 사귀자고? 엄허 부끄럽게. 농담도 그런 농담을 다하냐 넌. 뭐? 너네 집에 방 비웠으니까 들어와 살라고? 너네 집 어디니, 우리 학교에서 가까우면 들어가 살.... 아 이제 종강이구나.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언니들 이야기 뭐 더 없냐고? 음, 글쎄. 캠프 때 있었던 일들은 거의 다 이야기 한 것 같고, 개강하고 학교에서는 몇 번 못 봤긴 한데.. 두나언니가 휴학했잖아. 그래도 너가 원한다면 학교에서 내가 본 몇 가지 안 되는 일들도 이야기 해 줄 수도 있고. 원한다면, 


원 해?


 

6




 오랜만이야. 정말 엄청난 오랜만이다, 그치? 날 기다렸던 친구는 푸쳐핸섭! 아 잠깐 그 들어 올린 손으로 날 때리려고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 그럼 나 도망 갈 거야. 하도 오랜만에 와서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내가 잠수 타는 동안 지원언니 생일은 지났어. 지난번에 이야기해서 알고 있었지? 그날 지원언니랑 두나언니를 만났냐고? 에이 그럴 리가. 언니들에게 나란 존재는 손톱의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미묘한데, 생일파티에 날 불러 줄 리가 있겠어? 대신 하나 건진 것은 있었어. 내가 크나큰 용기를 내서 언니들한테 페북 친구신청을 했었는데 받아 준 거야. 그래서 지원언니 생일날 두나언니가 둘이서 만나 놀면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는 것을 구경했지. 그날 하루 종일 폰 붙잡고 사진 언제 올라오나 엄청 기다렸다니깐? 사진들은 어땠냐고? 뭘 물어봐, 그냥 둘이 우리 연애 중이에요. 말해주는 듯한 커플 냄새 폴폴 풍기는 사진이 대부분이었지. 두나언니가 장난인지 진심인지, 언니 사랑하는 거 알지? 선물은... 나야. 오늘 1일 데이트, 완전 좋지요? 이런 글을 지원언니 담벼락에 올렸더라고. 햙햙 이게 자정 조금 넘어서 올라온 글이었어. 근데 이 글 올라오고 바로 사진도 올라왔는데 둘이 같이 있더라... 그런 야심한 시간에 왜 둘이 같이 붙어 있는 것이냐고! 둘이 같이 사는 것도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아 근데 지원언니 반응이 더 대박이야. 방금 말한 선물은 나야 이 글 댓글에 지원언니가 뭐라고 달았는지 알아? 뭐라고 달았게? 맞춰 봐. 엄청 시큰둥해. 응? 그렇게 댓글 달아놨어도 엄청 햙햙 거렸겠다. 지원언니가 뭐라고 댓글을 달았냐 하면, 그깟 너 따위 매일 보는데 데이트는 무슨. 라고 달았더군.. 싸랑해여 지원언니 당신 없인 못 살아... 더! 더해줘요!! 더 떡밥을 뿌려줘요!!! 항상 떡밥은 두나언니에서 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런 대형 떡밥이 지원언니에게서 튀어나오더니 감격에 벅차서 잠이 안 오더군... 정말 잠이 안 왔어. 그래서 웹툰이나 보며 잠이 오길 기다리다 생각 없이 시간을 봤는데 아니 글쎄 새벽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는 거야. 헐 이렇게 올빼미 족이 될 순 없어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잣말을 중얼 거리며 웹툰을 종료하고 잠을 청하기 위해 다시 자릴 제대로 잡고 누웠어. 근데 손이 자꾸 폰으로 슬금슬금 가는 거야. 이유는 안 말해도 알지? 니 생각 내 생각과 같다면 Good. 그렇게 난 본능적으로 페북을 들어갔어. 글이 올라왔나 확인하는 거 끽 해봐야 5분, 아니 3분도 안 걸릴 일이잖아. 그리고 페북에 들어가자마자 맨 위에 올라와 있는 두나언니의 업데이트 사진이 눈이 들어왔어. 스탠드만 켜놓고 찍어서 어둡고 흐릿한 사진이었지만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이는 사진이었지. 정확힌 보이지 않는 것도 내 눈은 보고 있었을지도? 그만큼 날 설레게 한 사진이었거든. 무슨 사진이냐면, 두나언니 집인지, 지원언니 집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냥 방 안이었어. 그리고 두나언니가 가슴께 까지 끌어올려 양 팔 사이에 낀 천 조가리가 이불이 맞다면 아마 침대 위에서 찍는 것이 확실 할 거야. 두나언니는 울상을 짓고 있고 지원언니는 그런 두나언니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어. 표정은 두나언니와 상반되게 아주 장난스러운 웃음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고. 둘 다 나시만 입었는지... 겁나 섹시해 햙. 오늘 왜 이렇게 햙이 많이 나오지, 나 정말 변태 아닌데. 여튼, 그리고 글도 같이 남겼는데 나 잠 좀 자게 이 언니 좀 떼어줘 ㅠㅠ 이렇게 글이 올라왔다고. 하.... 그날 잠은 다 잤어. 뭐? 그 사진 공유 하자고? 시릉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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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나 약 먹을 시간 지났나봐. 


 

 응? 전에 이야기 해준다던 지원언니와 두나언니의 캠퍼스 생활이야기는 언제 해 줄 거냐고? 흠흠, 그 이야기 해야겠지.. 무슨 일이 있었더라, 내가 기억력이 진짜 똥 덩이리라서. 아? 일단 학교에 처음 왔을 때 본 것부터 말 해줄게. 학교 온 첫 날, 오케스트라실 바로 옆에 있는 관현악과 전용 사물함실이 있거든. 나도 사물함을 배정 받고 내 사물함이 어디 있나 위치를 확인하려고 사물함실에 들렸었어. 근데 제일 큰 사물함들 중에 첫 번째 사물함 앞에 무슨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거야. 솔직히 음대에 포스터 붙어있는 건 그리 놀랍지도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 나를 포함한 여기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연주가들이잖아. 그런데 네 명이 서 있는 그 포스터는 멀리서 봐도 유독 빛을 발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 뭘 망설이겠어, 가까이 가서 살펴봤지. 포스터 상단에는 Saxophone Quartet 이란 문구가 적혀있었고 그 글 아래엔 네 명이 서있었는데 그 네 명 중 2명은 예상대로 지원언니와 두나언니였어. 한 명은 지금 2학년 언니였고 다른 한 명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봐서 졸업생 언니인 것 같아, 적혀있는 날짜가 작년 거였거든. 어쩜 네 명 다 그렇게 여신이던지 우리나라에 색소폰 하는 여신들은 다 우리 학교에 모아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정말. 


 

 사진 속의 지원언니는 샤랄라한 귀여운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미니 치마를 입고 있었어. 머리는 그냥 단정하게 풀은 긴 생머리였는데 어후 청순해. 두나언니는 하얀 셔츠에 검은 스키니 반바지. 표정에서 시크함이 묻어 나오는데 화보가 따로 없었다니깐. 한동안 멍청히 서서 그 포스터를 바라보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겠다 싶어 사물함을 열어 보았어. 열자마자 시아를 가리는 어마어마하게 큰 악기 케이스에 조금은 놀랬지. 이건 바리톤 색소폰인 것 같은데 사물함에 넣어 둘 거면 좀 안 쪽으로 깊숙이 넣어 둘 것이지. 잘못 열면 앞으로 기울어서 날 덮칠 것 같은 자태였어. 난 바리톤 색소폰을 낑낑대며 사물함 안으로 밀었는데 뒤에 무언가 있는지 밀리지 않더라고. 그래서 색소폰을 빼고 안을 확인해 봤어. 그 안엔 하얀 종이들이 한 가득 있는 거야. A4용지는 아니고, 다 반으로 접혀 있었어. 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여전히 그 곳엔 나 혼자임을 확인하고 그 종이 하나를 빼 들었어. 그게 뭐였는지 알아? 팜.플.렛! 오 마이 갓. 이건 그냥 팜플렛이 아니라 언니들 사진첩과 흡사한 그런 팜플렛이었어. 총 4 페이지이었는데 첫 페이지엔 방금 본 포스터와 같은 사진이 있었고 두 번째 페이지엔 개인 프로필 사진, 세 번째 페이지엔 중앙에 흐릿하게 배경으로 쓰인 사진과 아래 구석에 위치한 작은 사진,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엔 바닥에 앉아서 찍은 사진. 그렇게 총 4 페이지. 나는 팜플렛 하나를 얼른 가방에 챙겨 넣었어. 팜플렛은 사람들 나눠 주고 남은 것들 잔뜩 모아 놓은 것일 테니 하나쯤 가져가도 모를 것이고, 만약 안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이니. 어쩌면 오히려 더 가져가라고 할지도 모르고. 팜플렛이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거잖아, 안 그래? 그리고 악기를 다시 사물함에 넣어 놓고 사물함실을 빠져 나왔지. 그날 집에 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지. 지금 그 팜플렛을 가지고 있냐고? 질문이라고 해? 우리집에 코팅까지 해서 잘 보이는 곳에 고이고이 모셔놨지. 이것도 공유해달라고? 음... 너 하는 것 봐서.


 

 그놈의 고기는. 넌 나한테 잘 보일 수 있는 게 고기 밖에 없니? 그래, 술 싫다 커피 싫다 단거 싫다 내가 가리는 게 많긴 많았네, 인정. 음, 하도 오랜만이라 기억력이 퇴보 되고 있어.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고 학교에서 본 이야기들을 해줄게. 난 지금 너무 피곤 한 것 같아. 악, 왜? 나 또 늦게 나타 날 것 같다고? 알았어, 그럼 약속 날짜를 잡자.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7




 아따 오늘 나 친구 생일에 앙상블 연습에 영화 약속까지 , 겁나게 바쁜데 꼭 오늘이여야만 했니? 그래 처음부터 너가 오늘 만나자고 할 줄 알고 언제가 좋을 것 같냐고 물어본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 어쩜 내가 딱 예상한데로 오늘 만나자고 할 수 있지? 이런 반전 없는 계집애. 


 

 음, 어제 너랑 만나고 돌아와서 지난 학기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봤어 . 언니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나 카페를 알아내서 그곳에서 죽치고 있다가 언니들을 마주쳤다. 뭐 이런 자질구레한 이야긴 간단히 건너 뛸 게? 첫 학기엔 브런치 콘서트라고 , 오전에 하는 연주회가 있는데 그 연주회 하기 2주 전 전부터 두나언니가 학교에 모습을 비췄어. 휴학생이라서 학교를 안 와서 그전엔 못 봤었고 , 그 연주회 때는 색소폰인 원이 부족하다고 교수님이 친히 연락을 취하셔서 불려 나왔다나 뭐래나. 학기가 시작하고 처음 두나언니를 처음 본 곳은 학교 주차장이었지 . 운전석에서 내리고 뒷좌석에서 악기를 꺼내고 있었어. 두나언니가 무어라 자꾸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난 처음에 왜 혼잣말을 할까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 가까이 가서 보니 앞좌석에 지원언니가 늘어지게 앉아서 차에서 내릴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야 . 그 모습을 보고 잘 생각해보니 두나언니는 제 악기에 지원언니 악기까지 꺼내들고 지원언니한테 내리라고 핀잔을 먹이는 중 이었던 거지. 지원언니는 ‘가기 싫어’ 이 말만 늘어지게, 반복해서 하고 있었어. 마치 늘어난 테이프가 판이 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 아 판이 튀는 건 시디니까 말이 안 되는 구 나. 하여간, 지나가면서 두 분 같이 오세요? 들릴 듯 말듯 소심하게 물어봤는데 두나언니가 꽤나 귀찮단 표정을 하곤 이 언니 집까지 내가 친히 찾아가 픽업해 왔어. 대답을 해줬어 . 두나언니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차 시트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던 지원언니가 차 밖으로 나와 두나언니 팔뚝을 강타했어.


 


"아 진짜! 언니 때문에 팔 멍들어서 민소매를 못 입잖아요!"

"아직 민소매 입기엔 춥거든? 그리고, 나 데리러 오는 게 그렇게 싫어?"

"언니도 차 있으면서 맨날 나한테 전화하니까 그렇죠, 내가 무슨 콜걸인가?" 

"... 알았어, 앞으론 전화 안 하면 되잖아." 


 

 그 말만 남기고 지원언니는 자기 악기 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빠르게 캠퍼스로 향했어. 어 어라? 이게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내 질문 하나에 두 사람이 싸운 것 같아서 순간 아차 싶었어. 그 아차 싶은 건 나뿐만 아니라 두나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숨을 쉬며 자신의 머리를 막 엉클더라. 옆에서 내가 지켜보고 있단 사실을 금방 깨닫고 다시 머릴 잘 정돈하긴 했지만.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대화도 없이 오케실로 향했어. 그 날 합주하는 내내 지원언니한테 싹싹 비는 두나언니를 볼 수 있었어. 미안하다고 애교도 떨고 쉬는 시간엔 괜히 어깨도 주물러주고 물도 떠오고, 애쓰는 게 가상해서라도 지원언니가 화 풀리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계속 뚱한 표정으로 두나언니를 밀어냈어. 그래도 다행인 건 집에 갈 때 두나언니 차를 타고 돌아갔다는 점이야. 어쩌면 별로 화 안 났는데 지원언니가 연기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캠프 때 지원언니의 연기력은 정말 배우들 빰 후려쳤거든.


 

 지원언니 연기 하는 거 너도 보고 싶다고? 야 안 돼! 언니 연기 할 때마다 매번 심장이 땅 속까지 낙하했었단 말이야. 진짜 철렁철렁,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 또 연기 한 적 없냐고? 응 없어. 벌써 두 번이나 했거든? 뭘 더 바래 이 자식아. 근데 정말 연기 한 거냐고? 레알 화났던 거 일 수도 있지 뭐.  지원언니가 화났던 건지 아니면 연기를 한 거였는지는 나도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걸 알면 내가 신이게? 그냥 그 다음 주에 본 모습이나 말 해 줄게.


 

 그 다음 주에도 혹시 두나언니가 차 끌고 오지 않았나 싶어 일부러 주차장을 가로질러서 왔어. 근데 우연일 땐 그렇게 잘만 마주치 더만 일부러 그 길을 선택하면 왜 그리 마주치기 힘든지, 아무리 둘러봐도 지난번에 본 차가 없어서 그냥 오케실로 향했어. 그리고 오케 시작하기 10분전, 출석체크를 부르는데도 두 사람 자리가 비어있는 거야. 출석체크는 1학년 이름 가나다순 쫙 부르고 2학년 가나다순, 3학년, 마지막으로 4학년 부르는데 지원언니가 4학년 부르기 시작할 때 허릴 굽히고 살금살금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어.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하지원. 이름이 불려 졌고 지원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성이 하 씨라 4학년 중에서도 맨 마지막으로 불리는 지원언니라 엄연히 따지면 지각인데도 아슬아슬하게 세이브 한 셈이지. 지원언니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른 조교 언니는 출석부를 들고 오케실을 나갔고 그 뒤로 두나언니가 들어왔는데 이게 웬걸? 두나언니가 오른발에 깁스를 감고 목발을 짚으며 쩔뚝거리며 들어오는 거야. 반 깁스 대고 들어오는 거 보니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대 참사는 다행이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걸음걸이가 어정쩡해서 느릿느릿 색소폰 파트 자리로 향하는 두나언니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고 두나언니는 창피한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민망한 웃음을 지었어. 지원언니 옆자리에 털썩 앉은 두나언니는 목발을 조금 신경질적으로 옆에 내려놨어.


 

"삐졌어?"

"몰라요."

"삐졌네."

"아픈 사람 놓고 냅다 뛰는 게 어디 있어요?"

"지각이잖아."

"치치. 와서 다리병신 부축했다고 말하면 되죠."

"우리 조교 인정머리 없는 거 알면서."


 

 사...사실이다. 우리 오케 출석 부르는 조교언니 인정머리라고는 매일 집에 남겨두고 오시는 분이다. 난 그 말을 들었을 당시 꼴랑 반 학기 학교를 다녔지만 그 말에 공감 할 수 있었어. 이런 내가 공감하는데 학교를 2년이나 다닌 두나언니가 공감 안 할리 없잖아.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로 두나언니는 무어라 토 달지 못했어. 그래도 그 날 하루는 지난주와는 사뭇 다르게 두나언니가 주도권을 잡고 있더라. 두나언니가 하필 오른발을 다쳐서 운전을 못 하는 바람에 지원언니가 차 끌고 온 것부터 시작해서 쉬는 시간에 목마르다며 앙탈 부리는 두나언니를 위해 손수 물까지 대접해 줬으니 말 다했지, 안 그래? 이건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인데, 지원언니 화났던 그날 두나언니가 풀어준답시고 지원언니 집 근처에서 둘이 한잔 했는데 너무 많이 마신 지원언니 부축하다가 다친 거였데. 그래서 그렇게 지원언니가 별 말 없지 두나언니가 해달라는 데로 해준 거였나 봐. 하여간 단 둘이 있을 때 저지르고 온 일들 들어보면 순 애기들이라니깐. 물론 밤에 단 둘이 있을 땐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야. 아 어떻해, 나 상상했어. 너도지? 니 얼굴에 나 상상했어요 쓰여있네요 이 변태야. 아 나도 마찬가지구나. 피차일반이네.


 

 하여간, 두나언니 목발은 짚으며 겨드랑이 아프다고 하는 지원언니 모습이 이 날의 관전 포인트였어. 목발이 왜 이렇게 높으냐며 두나언니한테 타박을 주고 두나언니는 제가 언니보다 키가 더 큰걸 어찌 하냐며 앉아서 웃고 있고. 지원언니는 목발을 태어나서 처음 짚어 보는지 자세가 영 안 나오는 거야. 오른발 들 때 오른손 나가고 왼발 들 때 왼손이 따라 나가는 그런 이상한 걸음모양새를 상상해봐. 지원언니가 목발 짚으며 걷고 있는 모습은 그 모양새보다 어색했으면 더 어색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야. 덕분에 두나언니는 그날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어.


 

 그리고 대망의 브런치 콘서트 날. 솔직히 별 생각 없이 학교에 왔는데 오 마이 가뜨.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바지를 입고 있는 두나언니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지. 몇 초간 인사 할 생각도 못하고 뚫어져라 쳐다만 보다가 정신 차리고 겨우 인사했다니깐? 소심한 나는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혼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했지만 두나언니는 익숙하단 듯이 웃어 넘기셨어. 내가 그렇게 경직까지 돼서 언니를 바라봤던 이유가 뭔지 알아? 언니 셔츠 단추가 족히 3개는 풀려 있었거든.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속살이... 어우 야. 부끄러워. 대체 왜 내가 부끄러운 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막 속에서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고. 내가 남자였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어. 웃지 마 나 지금 진지하단다. 그렇게 날 지나쳐 간 두나언니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원언니 옆에 가서 섰어. 햙 지원느님 거기 계셨군요! 지원언니는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뻐- 으와우! 갑자기 내 집에 고이 모셔놓은 팜플렛이 떠오르더군. 그 사진 속에 있는 두 사람이 현실 세계로 뿅 튀어 나온 것 같았으니까. 물론 옷을 완전히 똑같이 입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추 비슷하게 입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예? 아 니는 사진을 못 봐서 모르겠구나. 그래도 대충 상상은 갈 거 아냐. 연주 할 때 입는 옷이 다 거기서 거기잖아. 그렇게 사진 속에서 뿅 튀어 나온 것 같은 두 사람은 나란히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는 거야. 근데 이 날 둘이서 접신이라도 했는지


 

"화장실 다녀와도 돼?"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


"우리 파트 어디에 세팅해?"

"저희 파트 어디에 세팅해요?"


"연필 있어?"

"연필 있어요?"


 

 계속 둘이 똑같은 이야길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처음엔 같은 말 하면 서로 마주보고 웃더니 입만 열면 둘이 말 하는 것이 겹치니 주변 사람들이 뭐야 너네 무서워. 점점 상황이 이상해져만 갔고 서로 자기 말 따라하지 말라며 투닥 거리다 결국 지원언니가 극단의 조치를 내렸어.


  

"내가 알아서 다 말 할 테니까 넌 입 열지 마."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니 생각 = 내 생각 뭐 이런 거 아닌가?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닮는 다더니 틀린 말은 아닌가봐. 근데 정말 신기한 건 지원언니만 이야기 하고 두나언니는 한마디도 안했지만 두나언니는 그날 별로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 같았어. 정말 두나언니가 하고 싶은 말은 다 지원언니가 해주고 있던 것일까? 둘이 정말 통! 하였는가? 이 무슨 판타지 같은 일이 다 있노? 이 때 둘이 주제 정해 놓고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뭐 말하는 그런 게임 있잖아, 그런 게임 했으면 아마 둘이 계속 이구동성 했을 거야. 읭? 이 게임 이름이 이구동성인가? 뭐야 나 뭐라는 거야? 맞아? 맞다고? 뭐가 맞다는 거야. 미안 나 멍청한 거 티냈지? 그냥 짜져 있을게. 


 

 흠, 학기 중에 본 건 생각보다 얼마 없네. 브런치 콘서트 끝나고 두나언니는 또 학교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거든. 나도 너에게 아주 많고 많은 이야길 해주고 싶지만 내가 본 것들이 적은걸 어떻게. 캠프 때가 진짜 대박이었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 방학해서 또 더더욱 언니들 볼 일이 없다니 진짜 개강이 기다려진다. 와 내가 미쳤나봐 개강을 기다리다니. 하긴, 이런 황금 같은 방학 알차게 못 보내고 있어서 개강이 기다려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어제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쓸모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 슬프다. 아?! 어제 기억에 남는 일 딱 1가지 있다. 레볼 인증 타임. 나도 인증 했지롱로로롱롱롱.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어제 인증 타임 때 날 본 사람이 있는 건 아니겠지? 와 이거 모험이다. 뭐 어찌 되었건, 다음 주부터는 방학을 알차게 보낼 겸 학교 가서 연습이나 해야겠다. 너도 방학 나처럼 쓸모없이 보내고 있다면 열공하길 바래! 아니면 열심히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 우리 나이 아니면 언제 놀겠어, 안 그래?             


 


8




 나 왔어. 휴. 오자마자 왜 그렇게 한숨 질이냐고? 아 몰라 나 피곤한데 너가 불러냈잖아. 아니 사실은 그다지 피곤하지도 않아. 그냥 오늘 겪은 일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괜히 너한테 화풀이 했나봐, 미안해. 무슨 일 있었냐고? 그러니까.. 오늘 웬일로 황금 같은 낮잠을 반납하고 연습이나 해 볼까 해서 학교에 다녀왔어. 


 

 학교 가는 길에 뭐 마실 것이나 하나 사야겠단 생각에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렸는데 거기에 마침 두나언니가 주문을 하려고 서있는 모습이 보이는 거야. 난 완전 땡 잡았단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두나언니 옆에 가서 인사를 했어. 내가 인사하는 목소리에 천천히 고갤 돌려 나를 바라본 두나언니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안녕. 인사를 받아줬어.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유독 두나언니 어깨가 축 처져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지. 내가 오늘 유독 축 처져 보이는 몰골인 이유는 아마 두나언니한테 옮은 게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 그땐 당연히 지원언니가 심부름 시켜서 카페에 나와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근데 두나언니는 자기 꺼 딱 하나만 주문을 하는 거야. 그래서 조금 의아하게 언니 옆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날 돌아봤어.


 

"넌 뭐 마실 거야?"

"네? 아 저는.. 아메리카노요."

"아메리카노도 주세요."

"네, 테이크 아웃 인가요?"

"아뇨. 아, 넌 가져 갈 거야?"

"저도 마시고 갈게요."

"음, 그럼 초코케이크도 하나 주세요. 먹고 갈게요."


 

 주문을 마친 두나언니는 진동 벨을 들고 창가 자리로 향했어. 나도 따라가서 두나언니 앞자리에 앉았지. 언니한테 감사하단 말을 오물오물 이야기 하자 그제 서야 조금 미소를 지으며 날 봐주었어. 기분이 엄청 오묘했어. 사실 이 카페에 내가 자주 왔던 이유는 두나언니랑 지원언니가 자주 오는 곳이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언니랑 나란히 앉은 이 자리가 항상 지원언니와 두나언니가 앉아있던 자리라서 괜히 들뜨는 그런 기분. 알 것 같니? 내가 지원언니 자리를 꿰찬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그래도 언니와 나란히 마주보고 앉은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어. 그래서 용기가 났는지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는 두나언니에게 먼저 말도 걸어봤었지.


 

"지원언니는요?"

".... 글쎄."


 

 내 질문에 천천히 어깨를 으쓱이더니 모르겠단 표정으로 대답하는데 사실 별 것도 아닌 동작에서 이렇게 아련함이 묻어나오는 건 처음 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이지 못하겠더라고. 한참동안 정적이 흐르고 진동 벨이 울려서 난 마침 잘 되었다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우리가 먹을 케이크와 음료를 들고 돌아왔어. 테이블 위에 가져온 쟁반을 내려놓으니 고맙단 인사와 함께 자신의 음료를 들어 빨대 한 모금 마시곤 나에게 포크 하나를 집어 건네주었어.


 

"너도 먹어."

"아, 감사합니다."

"....지원언니, 남친 만나고 있어."


 

 에엑?! 케이크 귀퉁이를 작게 조각내어 한입 넣고 있는데 두나언니가 한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입에 있는 케이크 조각을 뱉을 뻔 했다니깐. 여전히 포크를 입에 문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나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두나언니는 개구지게 웃으며 말했지. 뭐야, 너도 나랑 지원언니가 사귄다고 믿은 거야? 그 말을 듣고 난 격하게 고갤 좌우로 저으며 아니라고 변명했지. 사실 그렇게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었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다고 들 하잖아? 내가 딱 그 짝 난 거였지. 그래도 다행히 두나언니는 나에게 그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았어. 그저 케이크를 먹고 있었지. 어쩐지 연습하기엔 영 집중이 되지 않는다. 단 음식이 당긴다.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 때 난 완전 멘붕 상태에 빠져서 언니가 하는 말을 들으며 적절한 대꾸를 했어야 됐는데 그렇지 못 했어. 지금 내 몰골만 봐도 영 상태 안 좋지? 이 이야길 들었을 땐 아마 지금보다 더 심각했을 거야.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가 자꾸 쓸쓸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가 다 지원언니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래도 좀 기억해 내 보라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닦달 하지 좀 마. 나 안 그래도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너가 그러면 더 정신이 없어진단 말이야. 흠, 맞다. 두나언니가 이런 이야길 했어.


 


"지원언니는 그런 말 듣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

"무슨 말이요?"

"너 배두나랑 사귀니?"

"..."

"오해 받는 걸 싫어했다고."


 

 잠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목소릴 바꾸고 얼굴도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꾸고 지원언니에게 말 했을 그 누군가를 흉내 내듯이 말 하더라. 그 이야길 하고 바로 풀 죽은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엄청 쓸쓸해 보였어. 무슨 위로라도 받아야 할 사람처럼 말이지. 근데 생각해보면 전혀 위로 받을 일이 없단 말이야? 잘 생각 해봐. 지원언니랑 두나언니는 분명 엄청 친하긴 하지만 거기까지 인 거잖아. 그냥 엄청 친한 선후배 관계. 근데 두나언니 표정은 자기 애인이 바람나서 도망간 것 같은 표정이었단 말이지.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해 드리고 싶었는데 감히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모르겠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나언니와 같이 암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밖엔 없었어. 그렇게 둘이 말없이 창밖의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바라보고 앉아서 케이크를 조금씩 베어 먹었어. 다 먹어 갈 때 쯤 두나언니는 김빠지는 콜라처럼 피식 웃으셨어.


 

"이런 이야긴 처음 해봐."

"네?"

"사실 이렇다 할 이야긴 하지도 않았지만."



 두나언니는 나한테 말은 비록 적게 했지만 마음속으론 엄청 많은 생각을 했었나봐. 남은 케이크 다 먹으라며 내 앞으로 손수 밀어 주신 케이크에 포크를 가져가며 두나언니가 하는 말을 듣고 나도 맞받아쳐 대답을 했어. 


 

"비 올 것 같네."

"비가 오길 바라는 것 일지도 모르죠."


 

 내가 그 땐 정말 정신이 나갔었나봐. 어떻게 이런 소릴 입 밖으로 뱉었는지. 미쳤던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감히 이런 오글거리는 대사를 치지 못 했을 거야. 두나언니도 처음에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 날 한 3초간 바라보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별도 못 할 정도였다니까.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어쩌겠어, 이미 뱉은 말인 걸.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언니는 이제 다 웃었는지 진정을 찬찬히 되찾았어.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네. 가자, 연습하러 학교 갈 거지?"

"...네."


 

 근데 정말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어. 하늘에 구름은 있었지만 언니가 말 한 것처럼 비가 올 것 같이 새까만 먹구름이 껴있고 그런 수준은 아니었거든. 오히려 햇볕이 쨍쨍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등 뒤로 흐르는 찜통 날씨였다고. 그래서 언니가 비 올 것 같다고 말 했을 때 문득 언니가 심리적으로 우울해서 그런 이야길 했을 거라는 예감이 스쳤던 것 같아. 그리고 카페를 나와 학교로 향하는 길에선 두나언니가 비 안 올 것 같다고 그러셨어. 정말 비 오길 바란 것뿐인 것 같다고 하면서 덥다며 땀을 훔쳤거든. 하여간 학교 연습실로 돌아와서 우리는 바로 옆방에서 연습을 했어. 연습 하다가 중간 중간 쉴 때는 내 방으로 넘어와서 나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고 저녁도 둘이서 같이 시켜 먹었어. 오늘 두나언니랑 많이 친해진 것 같은 부분은 기분이 좀 좋네. 아니 솔직히 많이 좋다. 우리 과 연예인이랑 친해졌으니 기분이 조금 좋았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이지, 안 그래?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내가 언니랑 친해지니까 부럽냐? 하나도 안 부럽다고? 너야 말로 분명한 거짓말이다, 거짓말 하지 마 얼굴에 부럽다고 다 써 있어.


 

 근데 내가 무슨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말이 샜지? 나 요즘 이런다니까, 방금 전 내가 하던 말도 기억을 못해요 바보같이. 아 맞아, 오늘 날씨가 엄청 변덕이 심했잖아. 기억해? 기억나지 오늘 날씨가 어땠었는지? 왜 뜬금없이 날씨 타령이냐고? 언니가 카페에서 비 올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잖아. 근데 연습하다가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밖을 봤는데 비가 오고 있더라고. 정말 신기했어. 비가 올 걸 알고 언니가 그런 이야길 했는지 아니면 정말 비가 오길 바래서 비가 오는 건지. 하여간 난 비가 온 단 사실을 언니에게 알리기 위해 언니 방으로 향했어.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언니 지금 비와요~ 이야길 했는데 언니는 통화하다가 내 목소리에 조금 놀래서 뒤 돌아보며 잠깐 기다리란 듯이 손바닥이 보이며 눈을 한 번 찡긋 해 주었어.


 


"네, 차 끌고 나왔어요. 알았어요, 어딘데요? 가깝네요 30분 안에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네. 미안,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



 전활 끊자마자 급하게 악기를 싸며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두나언니를 향해 괜찮다고 대꾸했어.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 같았거든. 사실 저녁 같이 먹을 때 한 이야기 중에 집에 갈 때 역 까지 태워주기로 약속했거든. 그 순간에 두나언니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 한 이유는 아마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어서 일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두나언 표정이 은근히 즐거워 보이는 거 있지? 그래서 물어봤지.


 


"무슨 급한 일 생기셨어요?"

"아.... 사실 지금 통화 한 사람, 지원언니야. 비 오니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아하? 지원언니 남자친구랑 같이 있다고 했잖아요."

"남친 보냈데. 지원언니는 남친이 언니 집 아는 것을 싫어해서."

"...예?"

"언니가 과거에 집과 남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언니 개인적인 이야기니까 자세히 말 해 줄 수는 없네. 나 늦으면 언니가 또 나 괴롭혀서, 이만 가볼게 안녕!"

"안..안녕히 가세요.."


 

 악기를 둘러매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가 버리는데 그 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라. 비록 두나언니와 지원언니 둘 사이가 내가 의심하던 그런 사이는 아니더라도 두나언니만큼은 진심으로 지원언니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 그렇게 결론이 나니까 괜히 엄청 꿀꿀해지는 것 있지? 내 방으로 돌아와서 연습을 하려고 악기를 집어 들긴 했는데 악보가 도저히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그 때 딱 두나언니가 카페에서 했던 말이 지금 내 상황이랑 겹치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연습을 하려고 해도 집이 안 돼서 못 하겠다는 그 말말이야. 두나언니는 분명 지원언니 때문에 심란해서 악보도 눈에 안 들어오고 집중도 못하고 그래서 연습실을 빠져나와 카페로 향했을 거야. 거기서 우연히 날 만났고. 지금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네. 응? 비 오면 지원언니가 두나언니를 부를 것을 두나언니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듣고 보니 그 것도 맞는 말 같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비 올 것 같다고 한 거지. 그치? 와 너 천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슬프다. 나 또 다운됐어. 오늘은 이만 집에 갈게. 아니지, 이제 언니들 이야기 하는 것은 관두려고. 이제 언니들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졌으니 계속 언니들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못 한 것 같아. 사실, 여태까지 이야기 한 것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아 피곤하다. 이번엔 정말로. 오늘은 일찍 들어가 자야겠어. 잘 지내, 나중에 또 볼 기회가 되면 보자.


 

9




 어쩐 일로 급히 널 불러냈냐고? 내가 너를 이런 야심한 시간에 불러낸 이유가 뭐겠어 이 바보야. 당연히 술, 고기 사달라는 거지! 응? 오늘은 좀 피곤하다고? 너가 사 준다고 했으면서 지금 딴 말 하기 스킬을 사용하려 하는 겅미? 정말 이러는 겅미? 와 너 나쁘다 진짜. 사실 오늘 일어난 엄청 따끈따끈한 해프닝이 있는데 듣고 싶지 않는가 보쇼? 무슨 해프닝이냐고? 몰라서 묻는 거니, 당연 지원언니와 두나언니에 관련 된 해프닝이지. 아 몰라 그냥 난 집에 가서 발이나 씻고 자야겠다. 잘 가. 너도 들어가서 발 씻고 다리 쭉 피고 잠이나 자버려. 굿나잇?


 

 뭐야 고기 사준다고? 이미 늦었어, 이 손 좀 놔 줄래? 나 스킨십 완전 싫어하거든?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니 손 무슨 불덩이 같아. 와- 너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쌨어, 좀 놓으라고. 알았어 알았어, 말 해 줄 테니까 제발 놔줘, 정말 더워서 그래. 이야기 해 줄 테니까 일단 어디 시원한 곳에 들어가자. 저기 보이는 고기 집이 시원해 보이는데 말이지? 괜찮지? 오키 저기로 결정.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지원언니랑 남자친구랑 헤어지기라도 했냐고? 음, 그 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지금 남자친구랑 사이가 많이 틀어진 것 같아. 대박이지? 잠깐잠깐, 일단 주문부터 하자. 이모! 여기 삼겹살 2인분이요! 술도 가볍게 한 잔 할까? 맥주는 배부르니까 소주? 오케이, 이모 여기 소주도 한 병 주세요- 나 사실, 지금까지 지원언니랑 같이 있었다. 그 것도 단 둘이. 언니가 늦었는데 못 데려다 줘서 미안하다고 택시비도 챙겨줘서 택시타고 곧장 너한테 달려 온 거야. 나한테 완전 고맙지? 알아 너가 나 사랑하는 거. 어이쿠 너 지금 너무 흥분 한 것 같아, 진정해 차근차근 이야길 해 줄 테니까.


 

 요즘 나 매일 연습하러 학교 가잖아. 오늘도 학교에 갔었지. 오늘 이상하게 연습이 잘 돼서 늦게까지 연습을 했어. 창문이 없는 방에서 연습을 해서 몰랐었는데 끝나고 밖에 나와 보니까 벌써 해가 떨어진데다가 학교 가로등이 망가진 건지, 아니면 방학인데다가 주말이라서 일부러 안 켜 준건지, 너무 어두워서 길이 잘 안 보일 정도더라고. 좀 무섭기도 해서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사물함실이 있는 캠퍼스로 가고 있었어. 어차피 내일도 학교 와서 연습 할 생각에 악기를 놓고 가려고 했었거든. 근데 들어가려는 문 근처가 조금 뿌옇게 보이는 거야.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코너를 도는 순간 누군가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어. 그리고 그 사람이 들고 있는 무언가를 입에 가져가 대는 순간 붉은 점이 진하게 빛나다가 옅게 변하더니 그 후로 내가 보았던 뿌연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져 날렸지. 완전 시적인 표현 돋네. 내가 뭘 설명하는지 딱 알아듣겠지? 결론은 누군가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펴고 있는 거야. 담배냄새를 싫어해서 인상을 쓰고 지나가면서 째려봤는데 그 사람이 글쎄, 지원언니인거야! 헐? 순간 멘탈 핵 실험 당했잖아. 어두워서 잘 못 본 것인가 내 눈을 의심했어. 그 자리에 우둑하니 서서 괜히 눈을 비비고 다시 그 사람을 봤는데 그 사람은 변함없이 지원언니가 맞더라. 지원언니는 다시 담배를 입에 대고 한 모금 빨아들인 다음에 후- 답답한지 무겁게 숨을 뱉었어. 엄청 기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보고 있는 나까지 축 늘어지게 만드는 모습이었어.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바닥 아래쪽 있잖아. 엄지 쪽 손바닥 말이야. 거기로 눈썹 부근을 꾹 누르며 인상을 쓰고 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 나 담배 피는 사람 엄청 싫어하는 거 너도 알잖아. 특히 관악기 하는 사람이 담배 피면 완전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지원언니는 담배 피는 모습마저 너무 섹시하고 멋있는 거야. 이 생각이 딱 떠오르면서 와, 내가 정말 제대로 미쳤나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니까. 근데 언니가 옷을 좀 그렇게 입고 화장도 그렇게 하고 있어서 더 내가 언니가 멋있어 보였을 수도 있어. 어떻게 입었냐고? 그냥 검은 민소매 원피스 입고 있긴 했는데 그게 엄청 잘 어울리더라고. 화장은 아이라인 완전 진하게 그리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어. 지원언니가 평소엔 수수한 캐주얼 차림으로 입고 다녀서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준 건 처음이었거든, 하여간.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언니가 담배 피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어. 우리 두 사람이 있던 곳이 남산타워가 잘 보이는 곳이었는데 지원언니는 바닥 아니면 남산타워 외의 다른 곳에는 전혀 시선을 돌리지 않아서 내가 옆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거든. 주변이 많이 어둡기도 했고. 한 개비를 반 정도 태우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게 뒤틀렸는지 담배를 무자비하게 바닥에 문질러 꺼버렸어. 그리곤 꽁초를 들어 바라보다가 옆에 그대로 팽개쳐 놓고 바닥에 놓여있는 담배 갑을 주워들었어. 정말 홧김에 꺼버렸었는지 한 개비를 다시 꺼내 입에 물고 그 안에 있는 라이터를 틀어 불을 붙이는 거야.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불을 붙이고 있는 그 모습도 엄청 멋있긴 했지만 그래도 못 피우게 말리고 싶단 생각이 먼저 들더라. 어쨌든 담배는 몸에 나쁜 거잖아.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조금 움직였는데 내 발 소리를 들었는지 지원언니가 내 쪽으로 돌아봤어. 순간 당황하기도 하고 쫄기도 해서 고개를 푹 숙이며 안녕하세요. 뜬금없지만 인사를 했어.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지원언니는 놀랬는지 두 눈이 커지더니 이내 담배가 들려있는 손을 등 뒤로 감추더라. 그러고 반대편 손을 어색하게 들어 인사를 해주었어. 마치 인사 하지 말고 빨리 내가 이곳을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 얼른 발걸음을 옮겨 캠퍼스 안으로 들어갔지. 생각해보니까 주말인데다가 저녁이니까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냥 캠퍼스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 앉아서 피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 평소엔 안 보이는 데서 피고. 그러니까 내가 언니가 담배 피는 걸 처음 봤겠지? 아님 말고. 잠깐, 고기 다 타겠다. 먹으면서 이야기 할게. 너도 좀 먹어.


 

 지원언니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일단 캠퍼스로 들어갔으니까 악기를 사물함에 넣기 위해 사물함실로 가는데 이번엔 두나언니가 보이는 거야. 두 눈이 시급하게 여기 저기 둘러보는데 쓰이고 있는 걸로 보아선 무언가를 급히 찾고 있는 것 같았어. 지나가면서 인사을 해 볼까 했는데 아까 지원언니 반응이 떠오르기도 해서 그냥 지나쳐 사물함실로 들어갔지. 악기를 넣고 사물함실에서 나오려는데 복도에서 두나언니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굉장히 화가 난 사람 목소리였어.


 

"제가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고 했잖아요."

"..."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

"내 말 안 들려요? 어디 다녀 오냐고요?!"

"..."


 

 난 사물함실 문이 살짝 열려있어서 그 사이로 복도를 내다보고 있었어. 내가 들어 온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지원언니를 보고 빠르게 지원언니 앞으로 가 길을 가로막고 물어보는 두나언니를 지원언니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안 하는 거야. 지원언니가 대답이 없으니까 두나언니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화가 나서 복도가 울릴 정도로 소릴 질렀어. 그 모습에 지원언니는 인상을 쓰며 두나언니 어깨를 밀어내고 두나언니를 지나쳐 가서 사물함실 문 반대편 앞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어. 두나언니는 자신을 밀어내는 손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곤 다시 지원언니 앞에 가서 섰지. 그리곤 허릴 굽히며 지원언니 손을 붙잡아 자기 얼굴로 가까이 가져가는 거야. 난 두나언니가 뜬금없이 지원언니 손등에 뽀뽀라도 하는 줄 알고 더 문에 바싹 달라붙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어. 그런데 손을 어느 정도 가까이 가져와 놓곤 아무 짓도 안하는 거야. 난 사태파악이 전혀 안 됐어. 하지만 지원언니는 두나언니가 무엇을 하는지 눈치 챘는지 두나언니에게 잡혀있는 손을 쓱 빼내었어.


 

"이 것 때문에 입 다물고 있는 거 에요?"

"..."

"이 냄새 날까 봐, 그거 숨기려고 입 다물고 있는 거냐고요."

"..."

"이렇게 당당하지도 못 할 거면서 왜 뻑하면 담배를 찾는데요? 나랑 약속도 했잖아요."

"..."


 

 두나언니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언니들의 행동을 이해했지. 두나언니는 지원언니 손에서 나는 향을 맡고 있던 거야. 지원언니는 그걸 눈치 채고 얼른 손을 빼낸 거였고. 두나언니가 엄청 쏘아붙이는데도 지원언니는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두나언니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내가 지원언니였으면 완전 심장 쫄깃해졌을 듯. 두나언니가 진짜 개 무서웠었거든. 두나언니는 화를 식히려는 듯이 이마에 손을 얹고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어. 둘 다 아무 말도 없으니까 학교가 어찌나 조용하던지. 내 숨소리가 언니들한테 까지 들릴까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니까. 그렇게 무언의 기 싸움이 몇 분간 흐르고 다시 입을 연 사람은 두나언니였어. 지원언니는 여전히 아무 말도 안하고 두나언니를 똑바로 보고 있을 뿐이었지.


 

"이제 그 인간이랑 헤어졌어요?"

"..."

"별로 마음에도 없는 사람 만나고 다니고, 그러고 싶어요?"

"..."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정도껏 해야죠."

"..."

".... 저도 참는데 한계가 있어요."

"..."

"아 답답해! 대답 좀 하라고요! 언니가 무슨 벙어리에요?"

"..."


 

 두나언니가 계속 꼬치꼬치 캐물어도 지원언니는 아무 대답도 없는데, 그게 어쩌면 지원언니만의 두나언니를 상대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어. 처음엔 그렇게 무섭던 두나언니가 점점 이성을 잃어가면서 그저 생각 없이 입 밖으로 말이 막 튀어나오고 있는 느낌이었거든. 그래도 두나언니가 하는 말을 듣고 대충 지원언니와 남자친구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 낼 수 있었지. 그리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두나언니가 말하는 '지원언니가 가지고 논 사람' 은 지원언니 남자친구이기 보다는 두나언니처럼 느껴졌어. 왜냐고? 그냥 내 감이지. 아니다, 정정 할 게. 그냥 감이기 보단 두나언니가 말하는데 뉘앙스가 그런 쪽으로 흐르는 느낌이 강했어. 내가 예쁜 여자 두 사람이 있으면 꼭 엮고 싶어 안달 나서 편파적으로 촉을 새우는 경향이 큰 건 분명히 인정 할 게. 근데 이 두 사람은 레알이야. 아무리 봐도 맘에 드는 남자 어장관리 하는 여자한테 화가 난 썸남 같은 냄새가 내가 숨죽이고 보고 있던 사물함실 안까지 폴폴 풍겨왔단 말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나언니가 마지막으로 하고 간 말이 '나도 언니랑 이런 관계 계속 되는 거 지치네요.' 였나? 이런 비슷한 이야길 했어. 느낌이 팍 오지 않아? 나만 그래? 언니들 진짜 우리가 의심하던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단순한 의심이 아닌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고. 뭐? 확신은 맞는데 둘이 싸웠으니 이제 쪽 난거 아니냐고?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단 소리도 있잖아.


 

 두나언니는 대답 없는 지원언니를 그냥 그 자리에 남겨놓고 먼저 나가버렸어. 그리고 두나언니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원언니가 막 울기 시작했지. 내가 그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두나언니 앞에 있을 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두나언니를 무시하고 있던 사람이 눈앞에서 두나언니가 사라지자마자 소리도 못 내고 끅끅 거리며 울고 있는 모습이라니. 두나언니 앞이라 참던 눈물을 한 번에 쏟아내는지 진짜 몸도 잘 가누지 못 하고 너무 서럽게 울고 있어서 나까지 마음이 찡하고 먹먹해져서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니까. 근데 한 편으론 언니가 울고 있으니까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그래서 엄청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어. 나 집에 갈 버스 끊길까 봐. 그 땐 몰랐는데 상황이 다 종료되고 집에 오는 버스 검색 해 보니까 새벽 1시가 막차임을 알고 난 참 멍청이란 생각을 했었지,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도 말했지만 지원언니가 택시비를 준 것도 있고. 택시비를 어떻게 받았냐고? 지금 마침 그 이야길 꺼내려던 참이다 이놈아. 



지원언니가 울다가 나랑 딱 눈이 마주쳤어. 진짜 오늘따라 언니랑 아이컨택 참 많이도 했네. 검은 아이라이너가 번져 있는 그 눈이 날 보곤 또 한 번 놀라서 참 동그랗게도 변하더라. 그리곤 다시 힘없이 고갤 숙이고 손으로 대충 눈을 훔치는 거야.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심정으로 사물함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서 휴지를 잔뜩 뽑아 와서 언니에게 가져다주었지. 내가 내민 휴지를 한동안 바라보던 지원언니는 결국 휴지를 받아 눈 주변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닦았어. 그렇게 닦고도 자꾸 눈물이 나오는지 휴지로 아예 눈을 막고 있더라. 그리곤 그 상태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고갤 숙이고 앉아있는 거야. 그동안 내가 두나언니랑 있는 지원언니 모습만 말해서 몰랐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원언니는 두나언니 외엔 다른 사람하고는 말도 잘 안 썩고 후배들 인사도 잘 안 받아주는, 심지어 같은 학년이랑도 잘 안 어울려 다니기도 하는 정말 얼굴만 반반하지 다가가기 힘든 선배라서 언니한테 무슨 말을 건네기도 힘들고 언니도 내가 옆에 있으면 언니가 불편해 할까봐 조용히 자릴 벗어나려고 일어났어. 근데 언니가 못 가게 날 불러 세우는 거야. 내 팔을 붙잡고 옆으로 끌기에 난 다시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어.


 

"잠깐만,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그, 처음부터요."

"... 두나 있을 때?"

"네... 그게 몰래 엿보려고 한 건 절대 아니고요..."

"됐어."


 

 그래 나 대놓고 엿 본 거 사실이다. 하지만 도둑이 제발 저렸다. 그런 거다. 그래도 지원언니가 무섭게 딱 내 말을 자른 것은 아니고, 나도 들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았어. 아니 오히려 언니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일을 누군가 알게 되어서, 그래서 그 일에 대한 이야길 공유 할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조금씩 속마음을 이야기 해 주었어.


 

"다 들었다고 했지? ...너가 보기에 나랑 두나랑 어떤 사이인 것 같니?"

"그게... 저... 잘 모르겠어요."

"솔직하게.”“저.... 평범한 선후배 관계는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솔직하겐 둘이 사귀는 사이 같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지난번에 두나언니가 지원언니가 두나언니랑 사귀는 것 아니냐는 오해 받는 걸 참 싫어 한다는 이야기가 순간 머릿속에 스쳐서 말 돌려 말하느라고 엄청 진땀 뺐잖아. 하여간 지원언니는 내 대답을 듣고 피식 웃으면서 그렇구나. 한 마디 하고 다시 눈가를 휴지로 살짝 훔쳤어. 그리곤 무거운 한 숨을 또 내 쉬었어.


 

"내가 잘못 한 것은 맞아."

"....네?"

"그래도 배두나가 그럴 줄은 몰랐어."

"..."

"나도 노력 했단 말이야."

 


 이야기 하면서 다시 감정이 격해지는 목소리도 더 떨리고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 코도 훌쩍 거리고. 눈물을 더 이상 흘리고 싶지 않은지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나오는 눈물을 참기란 참 어렵지 뭐. 결국은 내가 건네주었던 휴지를 들어 다시 눈가를 닦았어. 진정 될 때 까지 난 그냥 옆에 앉아서 언니를 바라봤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물론 언니는 내가 이야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많은 것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걔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나봐.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 네.."

"너도 아까 들었지? 참는데 한계가 있다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나 봐."

"..."

"그래도 걔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앞 뒤 다 자르고 이야길 하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고 지원언니가 무슨 이야길 하는지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는 않지만 느낌이 팍팍 오지? 두 사람 사이에 분명 보통이 아닌 일이 있었다는 것이 말이야. 지원언니는 두나언니를 엄청 끔찍이 생각 하는 것이 느껴졌어. 그래서 언니는 두나언니를 망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나 혼자 엄청 앞서 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지원언니가 두나언니랑 연애 감정이 있다는 식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두나언니만큼은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다 이런 식으로 언급을 한 거거든. 대화하는 내내 지원언니는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말하더라. 한마디 하고 몇 초간 생각해서 단어를 신중히 고르고 또 한 마디 하고, 다음 말을 할 때 역시 똑같이 몇 초간 보편적인 단어를 선택해서 이야기 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었어. 이야길 들어 보니까 지원언니는 두 사람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두나언니와 벌어진 현재 상황이 너무나 미운거야. 그래서 두나언니도 덩달아 같이 밉고. 밉지만 안 볼 수는 없고. 다시 보기엔 두나언니가 괘심하기도 하고. 말로 설명 하려니 참 힘드네. 지원언니랑 대화 했을 때 녹음이라도 해 둘 껄 그랬나봐. 언니가 뭐라고 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분명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인데 말이지. 분명한 건 나도 언니한테 한마디 충고를 해 주었다는 거야. 참 주제 넘게도 말이지. 뭐라고 했냐고? 지원언니가 자꾸만 두나언니가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 한 점을 서운해 하길 래 그럼 언니가 먼저 두나언니를 이해해 주면 어떻겠냐고 했어. 지원언니가 두나언니가 그동안 자신을 계속 이해해 줬다고 하니 이번엔 언니 차례다 뭐 그런 이야길 한 거지. 지금 내가 너한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언니가 두나언니를 이해 해 줘 봐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니고, 그... 언니가....두나언니를... 이해...해 ....줘 보면.... 어떨까요? 이런 식으로 완전 떠듬떠듬 이야기 했었다. 이 말 하면서도 엄청 심장 쫄깃쫄깃 해졌던 건 안 자랑.


 

 하지만 지원언니가 내 이야길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 것은 자랑. 개자랑. 장기자랑. 헐 미안. 소주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잠깐 내가 꼴랑 소주 3잔에 정신 놓을 사람은 아닌데? 아 지금 시간이 내가 정신 놓을 시간이구나. 흠흠 하여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지원언니도 마음이 조금은 풀렸는지 진정을 돼 찾았어. 두나언니한테는 먼저 미안하단 이야길 해 보겠다고도 했고. 늦은 시간이라 위험 할 테니 택시타고 가라고 택시비도 주고 내가 탄 택시 번호도 저장 하더라. 두나언니에게 대하는 태도를 제외하고 엄청 차갑고 시크한 줄로만 알았던 지원언니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좋았어. 빠르면 지금, 늦어도 개강 전까지는 언니랑 두나언니가 다시 친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다음번에 두 사람을 보게 될 땐 둘이 사이좋게 붙어 있으면 완전 감사할 듯. 언니들 둘이 같이 있는 모습 보면 다시 너 찾아 올 게. 투 비 컨티뉴! 오늘 고기 맛있었다. 

 

쌩큐베리감솨.


 

10



 나 왔어. 오늘도 어제 일어난 따끈따끈한 소식이 있지. 서론은 다 자르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 어제는 고등학생 때 레슨 선생님을 뵈러 서초동에 갔었어. 예술의 전당 앞에 레슨실 우글우글 거리는 거 알지? 아, 넌 음악을 안 해서 모르는 구나. 하여간 거기가면 음악인이란 음악인들은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그곳은 레슨실 밀집 지역이야. 나 역시 거기서 레슨을 받았으니 말 다 했지 뭐. 근데 어제 레슨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에 지원언니랑 두나언니가 딱 보이는 거야. 언니들도 근처에 레슨실이 있는지 연습을 하다가 나온 사람처럼 목에 목줄을 메고 있었어. 둘이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걸 보고 내 바람대로 둘이 화해를 한 걸 알 수 있었지. 흐뭇한 미소를 띠우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지원언니가 내 쪽을 돌아보면서 나랑 눈이 딱 마주 친 거야. 헐 내 표정 들킨 거 아닌 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니까. 멀리 있었기 때문에 못 봤길 바라는 수밖에. 언니들은 날 발견하곤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어. 난 습관적으로 고갤 숙여 인사를 했고.



"안녕, 이런데서 다 보네?"

"안녕하세요."

"저녁 먹었니?"

"아니요."

"우리 지금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인데, 같이 먹을래?"

"그래도 ... 되요?"

"안 될 것도 없지. 가자 가자."



 이게 무슨 횡재? 그것도 언니들이 먼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고. 우린 계속 뭐 먹을 까 고민하면서 목적지 없이 길을 걸었지. 내가 딴 사람이랑 있었으면 분명 대충 아무거나 먹어! 신경질이나 내며 눈앞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끌고 들어갔을 텐데, 언니들이잖아. 그리고 언니들이랑 같이 걷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기분이 들어 헤벌쭉,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녔잖아. 아마 너라도 그랬을걸. 그러다 결국 오늘은 좀 색다른 걸 먹고 싶단 지원언니 말에 두나언니가 우리를 끌고 파스타 집으로 들어갔어. 난 좀 놀랬어. 우리가 들어간 파스타 집은 나도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던 파스타 집이었는데 남들이 여기 하도 비싸다 비싸다 하고 떠들어대서 한 번도 안 왔던 곳이었거든. 그런데 그런 곳을 좀 색다른 걸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끌고 들어오다니. 그것도 언니들은 연습하다가 출출해서 밥 한 끼 때우려 나온 것이었을 텐데... 둘의 수입 현황을 어림짐작 할 수 있었지. 아님 애초에 집이 잘 살던가.



 메뉴판을 받고 대체 뭘 먹어야 할 지 모르겠는 거야. 그래서 그냥 크림 파스타 중에 하나를 골랐어. 내가 크림 파스타를 고르니까 언니들은 다 같이 먹자며 토마토소스 파스타 하나랑 피자를 주문하더군. 음료도 주문해서 먼저 나온 빵과 함께 먹고 있었는데 둘이서 자꾸 귓속말을 하는 거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계속 너가 해. 언니가 해요. 이 말만 서로 주고  받더라. 귓속말 내용이 엄청 궁금하면서도 둘이 자꾸 꽁냥 대는 것 같아서 난 또 혼자서 괜히 설레고. 그러면서 둘이 귓속말로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지 어림짐작이 가기도 하는 거야. 내가 한 눈치 하잖아. 너도 무슨 이야기 했는지 짐작이 가냐? 모르겠으니 얼른 말하라고? 알았어 알았어 말 해주면 되잖아. 하여간 성질은 엄청 급해가지고. 



"언니가 말하라니까요."

"너가 말 해. 너가 하고 싶다며."

"하- 알았어요.... 있잖아... 사실, 우리 사겨."

"....아...그래요...?"



 아아아아아악! 커밍아웃이라고 해야 하나? 두나언니는 한참을 뜸을 들인 후 지원언니와 사귄단 사실을 이야길 하곤 요상한 비명 비스무리한 소릴 질렀어. 그 소리에 얼마 안 되는 주변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의 시선이 두나언니한테 쏠리자 두나언니도 놀랬는지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주변 눈치를 살폈어. 지원언니는 그런 두나언니가 창피한지 고갤 못 들더라. 솔직히 나도 조금은 민망했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고 두나언니는 다시 한 번 씩 웃으며 아 개운하다! 이번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어. 



"정말 입이 근질근질 거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사귀어도 사귄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겠네요.."

"근데 너,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다? 마치 우리가 사귀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뜨끔. 예리하게 찔러오는 지원언니 말에 반쯤 돌이 되어버려선 무슨 변명도 못 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었지. 사실 언니들과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 그런데 우연히 만나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끌고 와 대뜸 사귄다고 커밍아웃 하는데 안 놀래는 후배라니, 그런 후배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 물론 난 안 놀랬지만,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얼굴에 달린 구멍이란 구멍들이 다 열리며 경악을 하는 반응이 일반적이잖아. 근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아.... 그래요? 라고 대답 했으니. 지원언니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난 머릿속으로 잽싸게 좋은 대꾸거리를 떠올리려 노력했지만 뇌도 같이 돌이 되었는지 어떤 변명도 못 떠 올렸어. 다행히도 그 순간에 음식이 와서 잠시 지원언니의 예리한 눈초리를 외면 할 수 있었어. 점원이 음식을 놓고 자릴 뜬 다음은 배가 고프니 일단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 하는 걸로? 하며 씽긋 웃으며 넘어가는 바람에 살 수 있었지. 처음엔 조용히 먹다가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두나언니였어.



"근데, 어쩌면 눈치 채고 있는 게 당연해요. 저번에 우리 싸운 것도 다 봤다면서, 그리고 싸운 후에 언니가 얘 붙잡고 울면서 하소연 했다면서요."

"심지어 얘가 조언도 해줬지. 안 그래?"

"아하하...하.... 그..그랬죠..."

"그래서 넌 우리가 사귄다는 게 안 놀랍다?"

"네? 아... 뭐...."

"너 관대하다, 진짜."



 순식간에 난 대인배가 되었을 뿐이고. 그래도 언니들이 처음으로 사귀고 있다는 걸 말한 사람이 나라는 것이 내가 완전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좋았어. 언니들이 날 믿는 다는 뜻이기도 하잖아? 우린 기분 좋게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눴지. 아 맞다, 내가 그거 은근 슬쩍 물어봤는데 대답 해줬어. 그, 캠프 때 지원언니가 고등학생 때 두나언니한테 고백 비슷한 것을 했다고 했잖아. 그게 뭐였냐면 지원언니가 두나언니한테 '너가 만약 남자였으면 바로 고백했을 텐데.' 라고 아쉬운 소릴 했었다 뭐 그런 이야기더군. 두나언니는 이 말 해주면서 키득키득 웃더니 여자여도 결국은 고백 할 거였으면서. 그러더라. 난 그때 살짝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못 하는 질문이 없었어.



"지원언니가 먼저 사귀자고 한 거 에요?"

"결론만 본다면."

"뭐에요, 언니가 고백한 거 맞으면서 말투가 왜 그래요?"

"엄연히 따지면 니가 나 좋다고 따라다녀서 이어진 관계잖아."

"그래도 결국은 언니가 고백한 게 맞죠."

"니가 안 해서 내가 했다. 됐어?"



 지가 용기 없어서 말 못하고 끙끙 앓았던 주제에. 와- 누가 들으면 나 혼자 좋아한 줄 알겠네. 언니도 나 좋아해서 똑같이 끙끙 앓았잖아요. 괜한 걸 물었나? 나란 존재도 잊고 둘이 어찌나 으르렁거리며 싸우던지. 벌써부터 사랑싸움 불붙은 언니들이 보기 좋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날 외롭게 만들어서 얄밉기도 했어. 



 식사가 끝나고 나와선 언니들이 집에 간다는 날 위해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줬어. 물론 걷는 동안 아주 대놓고 사귄다고 말 해주는 것처럼 꽁냥 거리고 있느라 나는 아웃 오브 안중이긴 했지만. 그래도 둘이 꽁냥 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별로 심심하진 않았어. 



"언니들은 집에 안 가세요?"

"우린 콰르텟 연습해야 돼. 개강하면 연주 하거든. 너도 보러 올래?"

"넌 필참. 보러 안 오기만 해봐."

"...네, 보러 갈게요.."



 어지간히 연습이 하기 싫은 모양인지 지원언니는 한 숨을 푹 내쉬며 연습하러 간다는 이야길 하더라. 그래도 언니들 연주하는 모습이라니 필참이라고 못 안 박아 놨어도 아마 난 보러 갔을 듯. 며칠 후에 포스터 사진 찍는다고 하던데 나 포스터랑 팜플렛 나오면 또 개인 소장 하려고. 아 맞어, 너도 개강하면 나랑 같이 언니들 콰르텟 연주 보러 가지 않을래? 아니다, 너도 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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